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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노동신문 공개, 씁쓸한 뒷맛

중앙일보

2026.01.13 07:18 2026.01.1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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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편집콘텐트국 기자
국가 지도자의 이름만 더 크게, 더 굵게 표기하는 신문이 지상에 있다. 그 국가 지도자의 사진을 전면으로 도배하는 건 일상이고, 때로 2개 면이 그의 사진으로 빼곡하다. 이 신문을 구기거나 버리는 건 목숨을 내놓는 행위다. 짐작하시겠지만, 북한 노동신문이다. 노동당이 북한 주민에게 정권 성과를 홍보하기 위한 기관지로, 당의 최고 글쟁이들이 매일 참신한 비방 표현을 짜내느라 분주하다.

가독성은 높다고 할 수 없다. 지금 독자들이 읽고 있는 이 지면 활자의 약 절반 정도 크기로 6개 면을 빼곡히 채우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름만 고딕체로, 더 크게 표기한다. 일반 자유민주주의에선 납득이 어렵다. 사진 배치도 어지럽다. 신문의 편집미가 아닌 ‘최고 존엄’ 예우가 최우선 순위여서다. 지난해 9월 김 위원장의 방중 때는 46장의 사진을 3개면에 도배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생일인 지난 8일자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김정은 얘기다)께서는 (중략) 불면불휴의 로고와 헌신으로 (중략) 대(큰)기적을 안아오시고도 늘 부족함을 느끼시며’라는 문장도 등장한다. 자지도, 쉬지도 않는 김정은 위원장이라니, 믿기 어렵지만 원래 노동신문은 ‘믿게 하고 싶은’ 내용으로 가득하다.

지난 7일 국립중앙도서관 내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일반 자료로 공개된 북한 노동신문. [연합뉴스]
노동신문을 이달부터 도서관에서 일반 자료로 열람할 수 있게 됐다. “노동신문을 본다고 국민이 빨갱이 되나”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엔 동의한다. 외려 언론출판의 자유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되니 말이다. 노동신문이 코미디 소재로 쓰이지는 않을지, 그래서 노동당이 또 발끈하지는 않을지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나마 가독성이 높다고 할 수 있는 건 제일 마지막 6면인데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가 아닌 일반 주민의 소식을 다룬다. 최근엔 “빨래 비누 등 질 높은 제품을 다달이 공급받으며 뿌듯이 느낀다”는 내용이 등장했다. 생활 수준이 높지 않다는 걸 스스로 드러냈다.

노동신문을 ‘특수 자료’에서 ‘일반 자료’로 변경해서 일반 국민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건 지난 정부에서도 추진됐던 바이기도 하다. 국민의 힘 장동혁 대표가 “북한 눈치만 살핀다”며 “우리만 무장해제”라고 했지만 공허한 비판이다. 노동신문과 북한을 향한 한국의 시선은 달라진 지 오래다. 정작 달라지지 않고 있는 건 북한이다. 노동신문 공개 범위 확대 결정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북한 주민의 여전한 어려움 아닐까. 빨래 비누를 받아 환호하는 북한 주민의 현실 말이다. 무인기 논란에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도발이나 자극 의도가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는 해명의 뒷맛이 씁쓸하다.





전수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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