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튀긴 온갖 오물 탓에 나라가 어지럽다. 이재명 대통령이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보수 진영 출신 이혜훈 전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관련 1일 1의혹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정부 첫 집권당 원내대표였던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불법 공천 헌금과 같은 각종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의 자진 탈당 요구를 거부해 12일 끝내 제명 처분을 받았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에나 있을 일…너무 충격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별로 없을 듯하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이른바 '비명횡사(비 이재명계 탈락)·친명횡재' 공천을 주도한 김 의원 본인이 공천 헌금을 받았다는 의혹은 일찌감치 제기됐지만 경찰이 덮어줘 아무 문제 없이 여당 원내대표까지 됐으니 하는 말이다. 게다가 뒤늦게 공개된 김병기-강선우 대화 녹취 음성 파일 덕분에 민주당의 서울시의원 공천 시세가 1억원이라는 사실도 만천하에 공개됐다. 이런 시대 퇴행적이고 후진적인 비리를 보며 평범한 국민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조국 사태, 민주주의 붕괴 시발점
'최소한의 상식' 마지노선 무너져
철학 없이 진영 논리에 함몰돼
비상식에 침묵한 지식인에 절망
민주당 공천 돈 거래는 예상 수순
그런데 영국노동당을 전공한 정치학자이자『조지 오웰 지식인과 권력』을 쓴 고세훈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흘러갈 거라 아주 구체적으로 예상했던 일이라 전혀 놀랍지 않다"고 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배경엔 한국 지식인들 정체를 드러낸 조국 사태가 있었다. 초판(2012) 낸 지 14년만인 올 초 이 책 개정판을 낸 고 교수를 지난 9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안혜리 논설위원
Q : -개정판 낸 이유는.
A : 서문에 썼지만 부패한 정치가 뒤엉켜 나뒹구는 시대라 다시 오웰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한길사에서 내고 3쇄까지 나오는 등 성과가 꽤 좋았다. 그런데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조국의 시간』(2021)을 한길사가 출간하는 걸 보고 계약을 해지했다. 김언호 대표한테 역사와 이름있는 출판사가 (조국 변명을 담은) 이런 책을 내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흥분하면서 한국 사법이 썩었느니, 당신이 그러면 안 되느니 하더라. 거기서 출판한 내 책을 다 중단시켰다. 이게 소문이 나 다른 출판사 제안이 와서 개정판을 냈다.
Q : -김 대표 외에 교수들도 조국에 감정이입 많이 한다.
A : 정체성이 일치하니까 그렇게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뛰어넘지 못한다면 굉장히 큰 문제다. 여기서 지식인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19세기 말 반유대주의 광기가 빚은 드레퓌스 사건 앞에서 에밀 졸라는 상식을 지키려고 '나는 고발한다'를 썼다. 그런데 한국에는 조국과 같은 편에서 그런 상식을 말한 지식인이 한 명도 없다. (자녀 입시 비리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목격하고도 모든 걸 진영 논리로만 이해한다.
Q : -진영 논리의 어떤 점이 문제인가.
A : 초판 땐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둘러싼 진영 논리로 시끄러웠지만 지금과 비할 바 안 된다. 진영 논리가 모든 걸 집어삼켰다. 진영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어디나 진영이 있고, 정치는 수많은 사회 갈등을 진영으로 엮어 해결한다. 그게 제대로 기능하려면 진영의 내용(사상적·이론적 토대)이 잘 정비돼 있어야 한다. 내용 정비가 지식인의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진영의 내용은 비어 있는데 지식인이 그 비어있는 진영 속으로 부나비처럼 뛰어든다. 특히 좌파지식인들. 조지 오웰이 비판했던 것과 똑같이.
" ※오웰은 "좌파지식인들은 진실이 상대 진영 선전에 악용된다는 이유로 자기편 범죄엔 눈을 감고 상대편에 대한 연민은 멈춘다"고 비판했다. 또 "늘 권력을 추구하고 권력 주변을 서성이는 지식인의 기회주의는 가장 가공할 권력의 형식이면서 전체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라며 "지식인이 전체주의에 취약하다"고 봤다. 민주당을 둘러싼 한국 좌파지식인 비판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 "
Q : -좌파가 왜.
A : 진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우리 좌파 진보는 사상적 뿌리가 없다. 그저 북한·중국과의 관계에서 형성돼와 진짜 진보를 공부할 틈이 없었다. 그럴 시기가 지났는데도 계속 공부를 안 했다. 그 결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지금 한국 정치를 주도하는 이 진영의 모습이 뭔가. 무도하고 무례하고 비굴한 행태들이다. 학문과 이론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그냥 한마디로 반 상식적이다. 한국의 비극이다.
Q : -한국 지식인은 왜 그럴까.
A :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지식에 대한 보상이 여전히 굉장히 강한 나라라서 그렇다. 한국에선 지식 자체가 권력 자원이고, 그걸 이용하려는 권력자가 넘친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다 보니 객관화해서 보질 못한다. 한마디로 권력의 액세서리를 마다 않는 지식인의 권력욕 탓이 크다. 좀 과장하자면 사회과학 교수들은 전부 잠재적 폴리페서들이다.
Q : -잠재적 폴리페서?
A : 자연과학에선 세계적 학자와 다루는 연구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 반면 사회과학은 찾기 어렵다. 세계 지식계에 이름을 내놓지 못한다. 이들 학자(교수) 대부분 영미권에서 유학하는데, 학위 받은 다음이 문제다. 영어 논문을 발표해서 끊임없이 동료 학자들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한국 교수들은 영어 장벽 등의 이유로 자격 있는 저널에 논문이 실릴 기회가 우선 없고, 더 중요하게는 그걸 원하지 않는다. 힘들게 그런 연구 안 해도 이미 많은 걸 누리는데 뭐 하려 하나. 일단 교수 타이틀만 따면 막강한 프레스티지(권위)가 주어진다. 단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걸 넘어 돈으로 환산되는 프레스티지다. 미국·영국 등에서 학자들이 존중받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우린 아니다. (현실정치나 학계에) 기여에 비해 보상이 터무니없이 많다. 이런 풍토에선 치열하게 공부할 유인이 없다.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내 지식이 활용될 만한 권력을 갈구한다는 의미에서 잠재적 폴리페서라고 한 거다. 교수들은 그렇게 레이더형 인간이 된다.
Q : -레이더형 인간?
A : 굳이 더 공부할 필요가 없는데 시간적 금전적 여유는 있다면 어디에 눈을 돌리겠나. 나를 써줄 만한 데를 향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겠나. 남 비판할 것 없다. 나부터가 그렇다. 사실 오웰은 내 전공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 정치학을 철저하게 공부해야 했다면 (500페이지 넘는) 오웰 책을 쓸 수 없었다. 학교가 허용한 여유와 금전적 혜택에서 나올 수 있었다. 진영에 속해 권력을 탐하진 않았지만 큰 범주에선 같다.
Q : -제대로 된 지식인의 역할은 뭘까.
A : 먼저 묻자. 우리가 아무리 역사와 사상과 철학을 공부해도 달라지는 것 없이 끝없이 (과오가) 반복되는데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역사·사상·철학 공부를 할까. 인간은 변한 게 하나도 없고, (무도한) 권력 속성도 그대로인데. 그건, 내일 또 잘못되더라도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걸 말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모순 속을 살아간다고 해도, 그 모순이 모순이라는 얘기를 하는 게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지식(인)이 권력의 도구로만 활용된다. 지식인 스스로 지식이 권력이라는 걸 알기에 조금만 지식을 쌓아도 남과 차별화하려고 과장하고 자랑한다. 정치의 큰 방향 설정은 못 하고 지식인이 정치의 시녀로 전락했다. 조국 사태가 결정적이다.
Q : -조국 사태가 왜 그렇게 특별한가.
A : 지금 삼권분립, 즉 민주주의가 다 무너져간다. 그 시발점이 2019년 조국 사태다. 사안의 본질은 권력자 부부의 자녀 입시 비리다. 사상이나 원칙, 이성이나 이론을 들이댈 필요도 없이 그냥 상식이다. 그런데 지식인들이 논쟁과 이론의 여지 없는 이 상식 앞에서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최소한의 상식이라는 마지노선이 무너진 거다. 조국은 공인이고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게 큰 권력자였다. 자기 연구실 안 사인 얘기가 아니라 공인의 비리가 만천하에 공개됐다. 그런 권력자의 비행에 지식인이 침묵한다는 건 지식계가 그만큼 부패해있다는 얘기다.
Q : -그 이후 또 실망한 사례가 있나.
A : 국민의힘이나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는 하기도 싫다. 이걸 제외한다면 지난 2024년 총선 당시 민주당 공천이다. 정당의 가장 큰 두 기능이 정책과 인사, 즉 공천이다. 그런데 조국 사태 못지않게 백주에 공당이 (비명횡사·친명횡재와 같은) 반 상식적 일을 자행하는데 지식인이 비판 대신 가담했다. 그런 맥락에서 김병기·강선우 사태는 필연이다.
Q : -다 예상했다는 말인가.
A : 그렇다. 조국 사태로 선이 무너졌으니 비명횡사 공천 같은 무도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 금전적 권력적 거래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고 구체적으로 예상했다.
Q : -관심 한복판인 서울 당 지도부의 공천 장사 의혹이 충격적이다.
A : 굉장히 순진하다. 변두리만 혼자 썩지 않는다. 중심부는 언제나 엮여 있다. 이익공동체니까. 그래서 무섭다. 정권이 이익의 문제가 돼버렸다. 돈과 권력의 이해관계로 얽혀있으니 정작 정상적인 진영 싸움은 일어날 수 없다. 이념이나 연대의식이 아니라 이익 중심으로 왔다 갔다 하는 터무니없는 상황을 너무 많이 보면서 사람들은 이제 무감각을 넘어 냉소주의로 흐른다. 아무 원칙 없는 시대, 사람들이 잣대로 삼는 기준은 딱 하나 내 이해관계다. '이해관계의 철학'을 눈치 빠른 정치인이 먼저 포착한 결과를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다.
Q : -바로잡을 방법은 뭔가.
A :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먼저 문제라고 인식을 해야 한다. 인식조차 못 하는데 어떻게 해결책이 나오나. 지금 한국 사회가 그렇다. 그럼에도 지식인 본연의 역할대로 말하자면, 희망은 언제나 당위다. 희망이 있어서 갖는 게 아니라 희망을 가져야 하므로 희망을 품는다.
◇고세훈=고려대 공공행정학부 명예교수. 연세대·서울대를 거쳐 미국 시러큐스대와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지난 2016년 정년 5년을 앞두고 타성에 젖은 교수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영국노동당사』『영국정치와 국가복지』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