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증원과 플랫폼 혁신을 둘러싼 타다 문제는 전혀 다른 사안처럼 보이지만, 놀라울 만큼 같은 방식으로 멈춰 섰다. 정책의 필요성은 명확했고, 사회 전체의 편익 또한 분명했다. 그럼에도 갈등은 격화됐고, 결정은 지연되거나 후퇴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실제 정책 교착의 원인은 대개 정책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정책을 둘러싼 갈등 구조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혁정책은 분배 문제를 동반하고, 총후생을 높이는 정책일수록 단기적으로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집단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손실이 정책 설계 단계에서 충분히 인식되고 완충되지 않을 때, 정책은 거의 예외 없이 멈춰 선다.
정책의 실패는 정책 자체보다는
정책 둘러싼 갈등 구조에 원인
구조개혁의 우선순위 정하고
역량 집중하는 전략적 선택 필요
이런 교착을 한국이 한 번도 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IMF 구조개혁은 예외적인 성공 사례였다. 당시 개혁이 가능했던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손실이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공동 분담으로 인식되며 분배 갈등이 완화됐다. 둘째, 위기라는 조건 아래 선택을 미룰 시간이 사라져 정치의 시간과 정책의 시간이 강제로 일치했다. 셋째, IMF 프로그램이라는 외부 구속을 통해 약속이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제도적으로 고정됐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었을 때, 한국은 정치적으로 가장 어려운 개혁을 관철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성공적인 개혁의 세가지 설계원리를 보여준다. 첫째는 손실을 흡수하는 보상과 완충 장치 내재화이다. 반대를 꺾으려 하기보다, 반대가 합리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를 정책 안으로 흡수해야 한다. 전환 지원과 손실보상장치를 포함해 분배갈등을 완화한다. 둘째는 집행과 순서의 세분화이다. 모든 것을 한 번에 하려는 개혁은 실패한다. 예를 들어 100일 안에 가시적 조치를 통해 방향 전환의 신호를 보내고, 1년 안에는 제도가 실제로 작동함을 보여주는 단계적 집행을 통해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3년에 걸쳐 핵심 규칙을 되돌리기 어려운 구조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본체 개혁을 완성해야 한다. 셋째는 신뢰 장치의 제도화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뒤집힐 것이라는 의심, 오늘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학습된 불신이 존재한다. 자동안정화 장치처럼 사전에 정한 기준에 따라 작동하는 규칙과, 사후 왜곡을 차단하는 독립적 평가·데이터 공개를 통해 약속이 유지될 것이라는 최소한의 신뢰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보면, 최근 발표된 2026년 경제성장전략은 문제 인식과 정책 조합의 측면에서 교과서적으로 매우 완성도가 높으며, 행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설계에 가깝다. 또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신년사에서 강조한 ‘신산업 육성을 통한 성장 기반 다변화와 구조전환의 지속’이라는 문제의식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따라서 이 전략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구조개혁의 본체는,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정하고 선택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정치의 영역이자, 한국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문제’라고 부르는 현상들의 성격도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부동산 문제, 저출생, 청년 일자리 부족, 살인적인 교육 경쟁은 흔히 개별 정책 실패로 논의된다. 그러나 이들은 각기 다른 문제가 아니다. 자원과 기회가 특정 경로로 집중되고, 실패의 비용이 개인에게 과도하게 전가되는 구조가 만들어낸 현상일 뿐이다. 주택 공급을 늘리고, 출산 장려금을 지급하고, 청년 대책을 확대하고, 입시 제도를 손보더라도 근본구조가 그대로인 한 현상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증상완화를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구조개혁 간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핵심 개혁에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규제개혁은 자본과 인재의 흐름을 바꾸는 규칙 개편이라는 점에서 개혁 효과의 파급력이 가장 크다. 규제개혁은 행정절차를 다듬는 기술적 개혁, 신산업의 진입을 허용하는 산업 촉진형 개혁, 그리고 기존 기득권을 보호해 온 규칙을 재조정하는 개혁까지 정치적 난이도가 전혀 다른 여러 층위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규제개혁도 기술적 개혁수준에 그쳤다면 이제는 산업 촉진형 규제개혁과 기득권 보호 규제의 조정까지 실행할 시기이다.
보상과 완충, 집행과 순서, 신뢰 장치라는 세 가지 조건은 정책이 현실로 진입하기 위한 최소한의 설계다. 옳은 정책이 계속 막힌다면, 그것은 정책이 틀려서가 아니라 정책을 통과시키는 설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정책 논쟁은 비로소 생산적인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정책이 옳은가”가 아니라, “이 정책에 반대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우리는 설계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