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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쉬운 것부터 푼다

중앙일보

2026.01.13 07:38 2026.01.13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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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13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조세이(長生) 탄광에 수몰된 유해의 유전자(DNA) 감정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인도주의적 협력에 양국이 손을 맞잡은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일본 나라(奈良)현에서 열린 정상회담 직후 공동언론발표를 통해 “1942년 일본 우베시 조세이 탄광에서 183명의 한국인과 일본인이 수몰 사망한 사고가 있었고, 80여 년이 지난 작년 8월에야 유해가 처음으로 발굴된 바 있다”며 “양국은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안에서 1㎞ 떨어진 해저 갱도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다. 사망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6명이 강제 동원된 한국인 노동자였다. 당시 일본 정부가 “대부분 구조됐다”며 사건을 축소·은폐했으나 1991년 조선인 희생자 명부가 발견되면서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합의에 대해 “과거사 문제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어낼 수 있어 참으로 뜻깊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DNA 감정 협력과 관련해 양국 간 조정이 진전되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과거사 문제를 두고 한·일 양국이 합의를 이룬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이 대통령은 한·일 과거사 문제와 경제·안보 분야 미래 협력을 분리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을 펼쳤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8·15 광복절 경축식에서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며 “일본과 미래지향적인 상생 협력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선언했다.

김영옥 기자


갈등 적은 조세이 탄광, 위안부 해법 위한 디딤돌

같은 달 21일 공개된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2023년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합의에 대해 “국가로서의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이번 회담 전까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총리와 세 차례, 다카이치 현 총리와 한 차례 등 모두 네 번의 한·일 정상회담을 했지만 과거사 문제는 직접적으로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일 양국이 비교적 갈등 소지가 적은 조세이 탄광 문제를 논의한 건 향후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등 오래된 난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디딤돌 성격도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중심의 조세이 탄광 논의에 정부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한 차원 높은 협력의 틀이 마련됐다”며 “향후 한·일 관계의 어려운 과제를 풀어나가는 동력이자, 초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두 정상은 13일 스캠(사기) 범죄를 비롯한 초국가 범죄에 대한 공동 대응도 강화키로 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경찰청 주도로 발족한 국제 공조 협의체에 일본이 참여하기로 했다”며 “양국 공조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합의문도 채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도 “국경을 초월한 조직적 사기는 양국 공통의 과제”라고 했다. 양 정상은 ▶출입국 간소화 ▶수학여행 장려 ▶기술 자격 상호 인정 확대 등 교류 활성화 방안도 논의했다. 이날 회담은 소인수 회담(20분)과 확대 회담(68분)을 포함해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국제 질서 속에서 한·일 간 협력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국이) 한때 아픈 과거의 경험을 갖고 있긴 하지만, 한·일 국교 정상화가 된 지도 이제 환갑이 지났다”며 “다시 새로운 60년을 시작하게 됐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국교 정상화 60주년이었던 지난해에 일·한 관계의 강인함을 보여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올해도 이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일·한 관계를 더욱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기를 바란다”고 했다.





오현석.김현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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