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무게도, 출산의 공백도 훌쩍 거스른 ‘초인’들이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접수에 나선다. 봅슬레이의 카일리 험프리스(41)와 엘레나 메이어스 테일러(42), 스노보드의 제이미 앤더슨(36·이상 미국)이 그 주인공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엄마 선수’라는 점이다. 이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임신과 출산은 곧 선수 경력의 단절로 이어진다는 통념을 깨부수며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는 무한 도전에 나선 이들에게 ‘수퍼맘(supermom)’이라는 별칭을 붙이며, 이들이 이탈리아 무대를 석권하기 위해 출발 채비를 마쳤다고 소개했다.
‘봅슬레이 여제’ 험프리스는 이번 올림픽을 빛낼 대표적인 수퍼맘이다. 올림픽에서만 세 차례 금메달(2010·14년 2인승, 22년 모노봅)을 목에 건 그는 여자 봅슬레이 역사상 최다 올림픽 금메달 보유자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2024년 6월 아들 얼딘(2)을 출산하며 엄마가 된 그는 2003년부터 21년간 쉼 없이 이어온 선수 생활을 잠시 멈췄다. 2년여의 공백기를 보낸 뒤 이번 시즌(2025~26) 트랙에 복귀했지만, 마흔을 넘긴 그가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험프리스는 보란 듯이 예상을 뒤엎었다. 지난달 22일 시굴다 월드컵 여자 2인승 정상에 오른 데 이어, 지난 11일 생모리츠 월드컵에서도 우승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험프리스는 NBC 인터뷰에서 “육아를 하다 보니 전에 없던 ‘수퍼파워’가 생겼다”며 “고작 2시간을 자고도 지치지 않고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법을 터득했고, 그 생존력을 봅슬레이 트랙에 그대로 적용했다”고 복귀 비결을 밝혔다.
험프리스의 동료 테일러 역시 봅슬레이 전설이자 소문난 ‘아들 바보’다. 통산 5개의 올림픽 메달을 수집한 그는 국제 대회 때마다 두 아들 니코(6)와 노아(4)를 대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장남 니코는 다운증후군과 청각장애를, 둘째 노아도 청각장애를 앓고 있어 테일러는 한시도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왼손바닥에 큼직하게 적은 ‘니코·노아야, 엄마는 너희를 사랑한단다’라는 문구를 관중석을 향해 흔들어 보인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들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그만의 가장 뜨겁고 고요한 방식이다. 마흔둘의 전설은 “과거엔 금메달을 위해 달렸지만 이제는 두 아들을 위해 트랙에 선다”며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들에게 터널 끝엔 반드시 빛과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올림픽 선수단 SNS는 “이들은 보통 엄마가 아닌 ‘엄청난 엄마’”라며 경의를 표했다.
설원 위에서도 수퍼맘의 질주는 이어진다.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의 제이미 앤더슨은 2014년 소치와 2018년 평창에서 연달아 금메달을 거머쥔 스타 엄마다. 특히 익스트림 스포츠의 성전인 X게임에서 역대 최다인 21개의 메달을 휩쓸며 ‘역대 가장 위대한 여자 스노보더’로 공인받았다. 2022 베이징 올림픽 이후 두 딸을 출산하며 은퇴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였으나, 그는 4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보드 위에 올라섰다.
놀랍게도 앤더슨의 실력은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이다. 미국 스노보드 대표팀이 선발전 없이 올림픽 출전권을 부여할 만큼 기량은 압도적이다. 둘째 임신 중에도 큰딸과 함께 설원을 누비던 ‘보드광’인 그는 “보드를 다시 타는 기분은 최고”라며 “엄마에겐 상상 이상의 수퍼파워가 있으니 내 경기를 기대해 달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과거 자신의 경력만을 위해 희생을 요구했던 이기적인 시절을 반성하며 “지금은 내 두 딸이 인생의 넘버원”이라고 고백했다. 또한 훈련 중 홀로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며 외조에 전념해준 남편에게도 감동적인 감사를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