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오는 20일(현지시간)로 백악관에 재입성한지 만 1년이 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대외 정책은 2026년 1월 3일(미국 현지시간)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작전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호원과 민간인 등 약 100명(베네수엘라 발표)을 살해해가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한 데 대해 '독재자에 대한 단죄' 프레임에서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마두로의 마약 밀수 관여 혐의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명분으로 제시하긴 했지만 외국 영토에 군사력을 동원해 국가정상을 압송해간 데 대해서는 영토보전과 주권존중이라는 국제법 원칙을 무시한 미국 일방주의적 행동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마두로 축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발 마약 문제 차단이나 베네수엘라의 민주 정부 수립 등에 역점을 두기 보다는 석유 이권 확보를 최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군사행동의 진정한 목표를 둘러싼 논란을 불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8일 보도된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자신에겐 국제법이 필요 없으며, 자신의 도덕성만이 국제 문제와 관련한 개입에 있어 유일한 제어장치라고 말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타깃으로 그린란드를 노리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지난 9일 "우리는 러시아나 중국이 그린란드를 차지(occupy)하게 두지 않겠으며 우리가 차지하지 않으면 그들이 차지할 것"이라며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측 당국자들은 주로 그린란드가 갖는 안보 및 전략적 가치를 이유로 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베네수엘라 이외의 중남미 좌파 정부에 대해 협상의 문을 열어 놓되, 고강도 압박 메시지도 내고 있다.
중남미 최대의 코카인 생산국인 콜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 구상에 지난 4일 "좋은 생각"이라고 언급했고, 쿠바에 대해선 지난 11일 베네수엘라발 원유 및 자금 공급을 차단하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8일 방영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제 (마약 밀매) 카르텔과 관련해 지상 공격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뒤 "카르텔이 멕시코를 운영(run)하고 있다"며 카르텔 박멸을 명분으로 멕시코 영토 내부에 대한 군사공격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행보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이른바 '돈로주의'다. 서반구(아메리카 대륙과 그 주변)에 대한 유럽의 개입을 배제하고 미국도 유럽의 갈등에 관여하지 않는 미국식 고립주의의 상징인 '먼로주의'의 트럼프 버전이다.
중남미 지역에서 반미 정권을 축출하고 친미 중심의 주변 정치지형을 만드는 한편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등을 통해 미국의 앞마당으로 치고 들어오는 중국의 영향력을 배격하겠다는 것이 돈로주의의 목표로 해석된다.
여기에는 중남미 인접국가들을 친미국가로 만들어 미국으로 유입되는 불법이민자와 마약 차단에 적극 협력하게 만들려는 포석도 내포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돈로주의의 추구에 있어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개입은 몇가지 시사점을 던졌다.
집권 2기 취임사에서부터 대외 군사력 사용에 신중할 것임을 공언한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국익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과감하게 사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감은 작년 6월의 이란 핵시설 타격에 이어 이번 베네수엘라 작전 등 미군 피해가 거의 없었던 두 작전 성공으로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목표 달성을 위해 국제법 관련 논란은 돌파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마두로 압송 작전을 통해 확인된 점이다.
세계 민주주의 진영의 리더 역할을 해온 미국의 국제법 경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고, 제재 등을 통해 단죄할 자유민주 진영의 도덕적 명분에 타격을 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더 나아가 중국, 북한 등의 다른 권위주의 정권으로 하여금 무력을 사용한 모험주의적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대담성을 갖게 만들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돈로주의에 내포된 또 하나의 논쟁 거리는 중국, 러시아 등 다른 군사강국과의 상호 세력권 존중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반구에서 미국의 장악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아태지역은 중국,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동유럽은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인정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많은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대목이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은 8일자 NYT 인터뷰에서 "그(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는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고 여기며, (대만에 대해) 무엇을 할지는 그가 결정할 일(that's up to him)"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대만 침공시 군사개입 여부에 대해 모호성을 견지하고 있는 데 대해 많은 이들이 '전략적 모호성'으로 의미를 부여해왔지만 '대만 침공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적 금지선을 거론하지 않은 채 중국 최고지도자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듯한 언급을 한 것은 다소 논쟁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작년 4월 100%가 넘는 관세를 주고받으며 갈등하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라는 역습을 당한 뒤 대체로 중국과 각을 세우지 않으려 하는 듯한 모습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 이후 중국이 일본을 강하게 압박하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러시아와 상호 세력권을 인정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해석을 낳고 있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서도 러시아의 자금줄을 조일 2차 제재(러시아산 에너지 수입국에 대한 제3자 제재)나 러시아 내륙 깊은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미사일의 대우크라이나 공급 등에 유보적인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또 하나의 관심은 트럼프의 '돈로주의'가 북미관계에 갖는 함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입장에서 마두로 압송 작전은 핵을 갖지 못한 반미국가 정상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라는 판단 하에, 핵무력 고도화에 더욱 매진할 가능성을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불가성 대외 군사개입이 자신과는 '완전히' 무관하다는 확신을 할 수 없다면 김 위원장으로선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때와 같은 정상회담과 서신왕래 등을 재개함으로써 '보험' 효과를 모색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반면, 서반구에 집중하는 돈로주의에 따라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과 개입 의지가 약화했다고 생각할 경우 북한이 한미동맹의 견고함을 시험하려 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개입과 관련한 중요한 바로미터로 외교가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이란에 대한 대응에 주목하고 있다.
이란 정권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대 수백명이 사망한 이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강력한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며 압박 메시지를 내는 동시에, 이란과의 협상 가능성도 시사했다.
돈로주의에 입각해 서반구 장악 의지를 선명히 드러낸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의 숙적 이란에서 발생하고 있는 유혈사태에 고강도 군사개입을 택할지 여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군사개입 범위가 서반구를 넘어설지 여부와 연결되는 측면이 있어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