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중국과 미국을 잇달아 방문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다음 목적지는 인도였다. 중국과 미국에서 수소차, 인공지능(AI) 등 ‘미래 먹거리’를 챙겼다면, 현대차의 해외 최대 생산기지가 된 인도에선 ‘현재 먹거리’를 점검한 것으로 풀이된다.
14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 회장은 12~13일 현대차 첸나이공장과 푸네공장, 기아 아난타푸르공장 등 인도 내 3개 공장을 모두 방문했다. 직선 거리로도 900㎞가 넘는 거리다. 앞서 정 회장은 4일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 경제 사절단의 일원으로 참석해 배터리, 수소에너지 기업 대표들과 만난 뒤, 6일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 가전쇼(CES 2026)’에 참석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등 테크 기업 관계자들과 만나 AI, 자율주행 기술 등을 논의했다.
정 회장이 인도를 찾은 건 인도가 현대차에게 핵심적인 시장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 1996년 인도에 진출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인도에서 현대차그룹의 시장 점유율은 20%까지 높아져 마루티스즈키(인도)에 이어 2위다. 인도는 현대차의 핵심 생산 공장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 인도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150만대로, 중국(166만대)과 큰 차이가 없다. ‘한한령(限韓令)’으로 중국 내 한국차 판매량이 줄면서 실제 해외 생산량은 인도가 최대다.
정 회장은 인도 공장을 둘러본 뒤 “현대차가 30년간 인도 국민의 사랑을 받아 성장할 수 있었다. 인도의 국민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또 다른 30년을 내다보는 홈브랜드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출 8년차인 기아는 아직 성장 잠재력과 기회가 큰 만큼, 도전적 목표를 수립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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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7조원 투자…업계 치열한 투자 경쟁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인도에 2030년까지 7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량 중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으로 성장했지만, 최근 5년간은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것은 14억 인구의 거대한 시장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경쟁하는 가장 치열한 격전지이기 때문이다.
일본 스즈키도 2030년까지 인도에 7000억 루피(약 11조4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스즈키의 자회사 마루티스즈키는 인도 자동차 시장 40%를 점유하는 압도적 1위 기업인데, 대규모 전기차 공장을 세우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토요타 역시 인도에 4번째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하고 생산량을 연간 40만대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인도 정부도 자국 내 공장을 적극 유치하는 ‘메이크 인 인디아’정책으로 중국을 대체할 ‘세계의 생산공장’을 꿈꾸고 있다. 평균 연령이 20대인 인도의 인구 구조는 기업에도 매력적인 선택지다. 이미 현대차와 기아의 인도 생산 물량 상당수는 중동 등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이 국경을 두고 정치적 갈등을 이어가는 가운데, 중국차가 인도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도 국내 업체엔 기회다. 여기에 인도는 전기차 점유율이 2%대에 불과해 캐즘(수요 정체)에 시달리는 전기차 사업의 성장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현대차는 올해 한국을 포함한 전체 세계 시장에서 전년보다 0.5% 증가한 415만8000대를 목표 판매량으로 제시했고, 기아는 6.8% 증가한 335만대를 제시했다. 올해 글로벌 신차 수요 증가폭 추정치가 1% 미만이란 점에서 공격적인 목표다. 업계에서는 목표 달성 여부가 글로벌 신차 판매 성과에 달렸다고 본다. 유민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기아의 ‘셀토스’가 인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신형 모델 출시 등에 따라 판매 호조가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