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새해 초 중국과 일본을 잇달아 방문하며 동북아 외교 일정을 마무리했다. 취임 첫해 대미 외교에 방점을 두며 한·미·일 협력의 연속성을 확인했다면 이번 중·일 연쇄 방문을 통해 한·중·일 협의의 틀을 가다듬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별다른 마찰 부각 없이 무난히 일정을 마무리했다는 총평이 나오지만, 상징적 의미는 큰 반면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다는 점은 한국 외교가 처한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부터 3박 4일간 중국을 국빈 방문한 데 이어 13일부터 1박 2일간 일본을 찾았다. 정상 간 보낸 시간을 따져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는 4시간 10분,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와는 4시간 54분 정도를 함께 보냈다. 방일 기간이 방중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짧았지만, 협의의 밀도는 더 높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일본에서 공식 회담 외에도 이틀 연속으로 다카이치 총리와 일정을 함께했다. 두 정상이 드럼을 치며 방탄소년단(BTS) 노래를 합주하고, 나라현의 고대 사찰 호류지(法隆寺)를 나란히 산책하는 모습은 정상 간 관계가 한층 가까워졌다는 점을 보여줬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이자 지역구인 나라현을 한국 정상이 직접 방문한 것을 일본은 상당한 외교적 호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대중 외교에서는 규모에 방점이 찍혔다는 평가다. 햇수로 9년 만에 한국 대통령의 국빈 방중이 성사되며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동행했고,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해각서(MOU) 14건이 체결됐다. 이 대통령은 시 주석뿐 아니라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와 자오러지(趙樂際)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을 연달아 만나며 이틀 만에 중국 권력 서열 1·2·3인자와 모두 회동했다.
다만 이 대통령의 방중 기간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희토류 수출 규제를 발표하는 등 중·일 갈등의 여파는 여전했다. 당장의 파열음은 없었지만, 중·일 갈등의 장기화는 한국 외교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사안이다.
시 주석이 "한국이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등 진영 인식의 간극도 감지됐다. 이후 다카이치 총리 역시 "공급망 협력에 대해 깊은 논의를 했다"며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를 우회적으로 저격했다. 공개적으로는 자제했지만, 이 대통령을 환대하는 속내는 각기 달랐던 셈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중·일 갈등 논의가 비공개로 이뤄졌을 가능성은 크지만 적어도 공개 발언에서는 큰 틀의 화두가 중심이 됐다”며 “갈등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한국과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 외교적 엇박자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방중과 방일 모두 본질적인 성과가 부족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내 중국 구조물 문제와 관련해 관리시설 이동 가능성이 언급됐지만, 이는 근본적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이 대통령은 양국 간 해양 경계 획정 협상에서 진전이 이뤄질 경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양국은 20여년간 협상을 이어오고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역시 이 대통령이 단계적 해결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가시적인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 문제는 중국의 중재 역할을 요청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중국은 "인내심"을 거론하며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는 “중국은 북한 문제를 기본적으로 한국이 아닌 미국과 다뤄야 할 사안으로 보고 있다”며 “서해 구조물 문제 역시 단기간에 해법을 도출할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현상 관리를 하며 충돌을 피하자는 쪽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오는 4월 미·중 정상회담 전까지는 한·중 관계에서도 미국의 움직임을 앞질러 나서지 않으려는 기류가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방문에서도 조세이 탄광 유해 신원 확인 협력 정도가 눈에 띄는 성과라는 평가다. 공동 언론 발표문에 “국제 규범을 만들기 위한 협력”이 담긴 점도 눈에 띄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출범해 현재는 미국이 빠지고 한·일 등 10여 개국이 이어가고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 플랫폼을 활용하겠다는 취지로도 해석된다. 또한 발표문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관심을 모았던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과도 맞물린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규범을 선도적으로 만들어가겠다는 표현은 일본이 자주 사용하는 외교적 메시지”라며 “CPTPP는 일본이 주도하고 있긴 하지만 모든 회원국의 동의와 협상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설령 언급이 되더라도 ‘가입 추진을 환영한다’거나 ‘지지한다’는 수준을 넘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방중과 방일 결과의 차이를 가장 분명히 보여준 것은 북한 문제였다. 이 대통령 방중 당시 북한 비핵화 관련 언급이 전혀 없었던 반면 이날 한·일 공동 언론 발표문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담겼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내에서도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로 표현하곤 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핵·미사일 문제"를 언급했고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지지 역시 부각했다. 대북 대화를 모색하며 관여에 방점을 두는 이재명 정부지만, 한·미·일 협력의 틀로 접근하는 게 불가피한 북핵 문제에 대한 원칙적 대응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같은 날 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남북관계 개선은 개꿈”이라며 즉각 반발 메시지를 낸 것도 이러한 흐름을 북한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방증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