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제명하는 문제를 놓고 장동혁 대표와 한 전 대표가 14일 정면 충돌했다. 6·3 지방선거를 140일 앞두고 심야에 전격적으로 제명 결정이 이뤄지자 제1 야당의 전·현직 대표가 각자 정치 생명을 걸고 마주보는 기차처럼 달리는 형국이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위원장 윤민우)는 한 전 대표의 가족이 연루된 ‘당원 게시판 사건’과 관련해 이날 새벽 한 전 대표의 당적을 박탈하는 최고 수위의 징계인 제명을 의결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최고위원회의가 윤리위 결정을 의결하면 징계는 최종 확정돼 즉각 효력을 갖게 된다.
한 전 대표는 강하게 반발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엄을 막고 당을 지킨 저를 허위 조작으로 제명했다”며 “국민·당원과 이번 계엄도 막겠다”고 제명을 계엄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장 대표가 계엄을 막은 저를 찍어내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윤리위의 독자적 판단”이란 장동혁 지도부의 주장을 반박하며, 제명 결정의 배후로 장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윤리위의 예상치 못한 일격에 새벽부터 발칵 뒤집힌 친한계는 이날 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 전 대표와 친한계 의원 10여 명은 오전 8시 30분 서울 마포의 모처에서 모여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격앙된 반응도 잇따랐다. 부산 지역 친한계 의원은 “장 대표 퇴진 운동에 나설 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어게인’ 세력을 내세운 최악의 비민주적 결정”(박정훈 의원)이라거나 “당을 자멸로 모는 사심 정치”(한지아 의원)이라는 장 대표 저격 발언도 쏟아졌다.
장 대표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날 오전 대전에서 이장우 대전시장 예방을 마친 장 대표는 취재진을 만나 ‘(한 전 대표 징계는) 정치적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윤리위 결정이 나온 마당에 그 결정을 곧바로 뒤집고 다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따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당무감사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고 논의한 시점으로부터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며 “저는 ‘걸림돌’ 얘기를 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누가 먼저 풀고 가야 이게 정치적으로 해결될지에 대한 제 입장을 말씀드렸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가 정치적 해결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는 주장이다. 장 대표는 이날 TJB 인터뷰에선 “문제를 덮고 가는 게 오히려 지방선거 악재”라고도 했다.
지도부 인사들도 잇따라 징계 결정의 옹호 발언을 이어갔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당의 원칙과 기강을 바로 세우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제명을 반겼다. 신동욱 최고위원도 BBS 라디오에서 “당원 게시판 문제를 그냥 덮자고 할 순 없는 노릇”이라며 “이 문제를 갖고 너무 오래 끌었고, 빨리 결론을 내야 한다는 일종의 공감대가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채널A 유튜브에서 “윤리위 결정은 윤석열 시대가 당에서 정리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양측뿐 아니라 국민의힘도 두 동강이가 났다. 이날 오전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서울시당위원장인 배현진 의원이 “우리는 오늘 최대치의 뺄셈 결단을 내렸다”고 발언하자 한 전 대표 지지층은 박수를, 장 대표 지지층은 “내려와라, 시끄럽다”고 고성을 냈다. 행사 뒤엔 일부 당원들이 송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 등을 향해 “제명을 철회하라”고 소리쳤다.
당내 소장파 초·재선 의원 모임인 ‘대안과 미래’는 “제명은 반헌법·반민주적 행위다. 최고위에서 재고해달라”는 성명을 냈지만, 국민의힘 원외당협위원장 운영위원회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선 환부를 도려내는 쇄신이 필요하다”는 제명 찬성 성명을 냈다.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자 다선 의원들은 “파국을 막아야 한다”며 양측의 자제를 요구했다. 조배숙(5선) 의원은 “정당의 윤리 징계가 분열의 종착역이 돼선 안 된다. 당 지도부의 재고를 요청한다”고 했고, 권영세(5선) 의원도 “제명 처분은 과한 결정이다. 최고위가 합리적 결정을 내려야 하고, 한 전 대표도 적극 소명하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장 대표와 한 전 대표 모두 중재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 장동혁 지도부는 외려 속도전을 펼 가능성이 크다. 15일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가 예정된 만큼 최고위를 연 뒤 의총에서 의원들에게 최고위 결정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고위 구성원 9인 중 제명에 공개 반대한 이는 양향자·우재준 최고위원 둘뿐이어서 현재로선 윤리위 결정 대로 최종 제명 처분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중론이다.
한 전 대표 또한 제명이 최종 결정되면 법적 다툼으로 싸움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당헌·당규에 따르면 윤리위에 재심을 청구할 수도 있지만 한 전 대표는 ‘재심을 청구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친한계인 배현진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최고위에서 징계 결정이 나면 당연히 가처분 (신청을) 할 것”이라고 했다. 친한계는 제명 확정 전 탈당 가능성엔 “당을 떠나 싸울 생각은 없다”고 강조했다.
친한계 내부에선 징계 처분에 대한 가처분 신청 등 법정 공방이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배 의원은 “윤리위에서 바보같이 두 번이나 (윤리위 결정문을 정정했다). 가처분이 인용될 거라고 믿고 있다”라고 했다. 윤리위가 “한 전 대표가 게시글을 작성했다고 판단”이라는 제명 결정문 문구를 “한 전 대표 가족 명의로 추정되는 게시글”이라고 수정한 걸 두고 “징계 사유 짜 맞추기”라고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친한계는 ▶제명 결정의 토대가 되는 당무감사위의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 조작 가능성 ▶두 차례에 걸친 윤리위 제명 결정문 정정 ▶충분한 소명 기회 미부여 등 제명 과정에 절차적·실체적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장 대표 주변에선 “법적·절차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은 이날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당에서 당헌·당규 절차상의 문제가 없도록 유권해석을 충분히 받았기 때문에 가처분을 걸어도 결과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원 게시판 사건은 지난해 11월 한 전 대표 가족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당원들이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1600여건을 글을 올린 게 알려지며 시작됐다. 지난달 30일 당무감사위가 윤리위에 회부하자 한 전 대표는 “가족이 비판적 칼럼 등을 올렸다”고 인정하면서도 “문제의 게시글 다수는 ‘동명이인 한동훈’이 올린 글이다. 당무감사위 결과는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리위는 “(대통령) 소속 정당 대표와 가족이 대통령과 당의 지도부를 공격하고 분쟁을 유발하여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추락하게 한 것은 윤리적·정치적으로 매우 중차대한 해당 행위에 해당한다”며 제명 결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