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피 끓는 음악이 AI에게 질까

중앙일보

2026.01.14 07:04 2026.01.14 12:15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정재일 음악감독이 지난달 24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피아노,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정 감독은 “결국은 연주도 작곡을 위한 훈련이었다”며 “기회가 된다면 대금, 아쟁 등의 국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음악감독 정재일(44)의 오른쪽 목 뒷덜미에는 학문이나 인격을 끊임없이 연마한다는 뜻의 한문 ‘닦을 수(修)’가 새겨져있다. “늘 공부하겠다는 자세로 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의미하는 글자다. 그가 지난 30여년 간 걸어온 음악적 행보는 가히 ‘수련’이라 할 만하다. 포크, 펑크, 가요, 일렉트로니카, 영화·드라마 음악, 국악, 클래식 . 17세에 밴드 ‘긱스’의 베이시스트로 데뷔한 ‘천재소년’은 이제 음악계의 ‘수퍼 멀티플레이어’로 성장했다.

15일(현지 시간)엔 미국의 스트리밍 서비스 ‘피콕(Peacock)’에서 공개되는 드라마 ‘포니즈(Ponies)’의 음악감독으로 팬들을 만난다. 포니즈는 ‘왕좌의 게임’ 여주인공 에밀리아 클라크가 7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하는 작품이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제작된 드라마의 음악감독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포니즈.
지난달 24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정재일은 “그저 기회가 왔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 뿐”이라고 했다. 늘 그랬듯, 단정하나 단호한 말투였다.


Q : 언제 제의 받았나.
A : “2년 전 쯤이다. 관계자 미팅을 하러 미국에 갔더니 이미 나를 점찍어 둔 분위기였다. 전에 작업해보지 못한 장르라는 점도 끌렸다. 스파이·버디·코믹물이 모두 섞여있다. 고민 없이 계약서에 사인했다.”


Q : 새로운 도전이다.
A : “(금전적) 보상도 중요하지만 내 예술적 욕심을 채울 수 있는 작품이 좋다.”


Q : 협업은 어떻게 이뤄졌나.
A : “평소 작업 땐 촬영 현장도 가보는 편이지만 이번엔 녹음 디렉팅까지 줌으로 진행했다. 전체 작업은 5개월 정도 걸렸는데, 시차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회의하는 일도 많았다. 작품 배경이 되는 1970년대 러시아의 팝까지 들으며 시대 특성을 살리려 노력했다.”

그는 지난해 클래식 무대에도 데뷔했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의 강력한 러브콜로 성사됐다. 서울시향은 지난해 9월 롯데콘서트홀에 이어 10월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정재일의 ‘인페르노(Inferno)’를 연주했다. 정 감독이 평소 틈 날 때마다 보는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영감을 떠올린 교향곡이다.

오징어게임.
정재일을 설명할 때 영화 ‘기생충’(2019)과 드라마 ‘오징어게임’(2021 ·2024·2025)을 빼놓을 수 없다. 두 작품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그는 이후 다양한 해외 무대에서 리코더를 불고 피아노를 치며 작품 속 음악을 직접 연주해왔다.


Q : 라이브 무대의 해외 관객 반응은.
A : “익숙한 OST도 좋아하지만, 반응이 열광적인 건 국악이다. 내 솔로 곡 중 ‘어 프레이어(A prayer)’라는 퓨전 국악 음악이 있다. 대금·사물놀이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면, 객석에서 기립 박수가 나온다. 한국 사람이 한국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존중이 느껴진다.”

그는 어린 시절 한 마디로 ‘음악밖에 모르는 금쪽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이를 속이고 음악 잡지에 직접 구인광고를 내 밴드 멤버를 모았다. 수학여행 때는 가방에 CD만 잔뜩 넣어가느라 교복 말곤 다른 옷을 입지도 못했다.


Q : 엄마가 속 터졌겠다.
A : “‘이걸로 밥 못 먹고 산다’며 기타를 부수신 적도 있었다. 그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으셨던 것 같다. 신문에 난 재즈아카데미 학생 모집 광고를 보여주며 한 번 지원해보라고 하셨다. 고교 진학 대신 재즈아카데미를 선택한 것도 엄마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플레이리스트에는 모차르트와 말러, 메탈리카와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항상 자리하고 있다. 듣는 것만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온 그가 세운 다음 과제는 “AI(인공지능)에 지지 않을, 사람만의 음악을 하는 것”이다.


Q : 앞으로의 음악적 목표는.
A : “더 단단해지고 싶다. 최근엔 라이브로 연주할 수 있는 음악에 관심이 많아졌다. 수노(SUNO·AI 작곡프로그램)도 써봤는데, 놀라웠다. 지지 않으려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민지(choi.minji3)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