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3세가 감복했다는 『손자병법』은 그 내막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손자(孫子·사진)의 본명은 무(武)였는데, 기원전 500년 무렵 춘추 시대를 살았다. 그는 오나라로 넘어가 부차(夫差)의 아버지인 합려(閤廬)를 섬겨 그를 제후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그는 벼슬로 나가기에 앞서 13편으로 구성된 병서를 썼다. 당시의 제후들이 그것을 『손자병법』이라 불렀다.
손자가 죽은 뒤에 병서는 세상에서 묻혀 일부 제후들만이 읽었는데 피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은 피하지 말아야 하며, 전쟁에서는 속임수를 쓰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하지만, 가장 훌륭한 장군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사람이라는 것이 글의 핵심이다.
『손자병법』은 진시황의 갱유분서(坑儒焚書) 때 지하로 들어갔다가 한나라 시대에 다시 머리를 들었다. 이때 이 책에 심취한 사람은 조조(曹操)였다. 그는 『손자병법』을 깊이 연구하고 가필한 다음 자기 이름으로 세상에 펴냈으나 당대 재사들의 비웃음을 받자 책을 모두 태워버림으로써 다시 지하로 들어갔다. 모택동(毛澤東)이 장정(長征·1935~36) 때 즐겨 읽었다지만 사실이 아니다. 『손자병법』이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72년이기 때문이다.
손자가 죽은 뒤 그의 5대손인 손빈(孫臏)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도 모르고, 언제 태어나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손무가 쓴 『손자병법』을 갖고 있었다. 병법을 익혀 위나라를 섬겼는데, 동문수학하던 방연(龐涓)이 그를 시기하여 빈형(臏刑·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형벌)을 가해서 앉은뱅이로 만들어 손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손빈은 불구로 행세하며, 자신을 비웃는 방연에 대한 복수심을 안고 제나라로 탈출하여 군사를 얻어 침략하니 방연이 자살했다. 복수가 끝나면 기쁠 줄 알았지만, 그는 옛 친구의 시체를 안고 짐승처럼 울었다. 복수는 그렇게 허망함만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