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의 95%는 장에서 만들어진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하지만 함정이 숨어 있다. 장에서 만들어진 세로토닌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쓰이지 못한다. 뇌와 혈관 사이에는 혈뇌장벽이라는 까다로운 검문소가 있다. 장에서 합성된 세로토닌은 분자 구조상 이 장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뇌에서 쓰이는 기분 조절용 세로토닌은 뇌세포가 스스로 만들어 써야 한다. 장 속의 세로토닌 공장과 뇌 속의 세로토닌 공장은 서로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별개의 존재다.
그렇다면 장에 있는 95%의 세로토닌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장을 꿈틀거려 음식물을 내려보내고(연동 운동), 소화액을 분비시키는 게 그들의 주요 업무다.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 구토나 설사를 일으켜 얼른 내보내는 것도 세로토닌이 보내는 신호 덕분이다. 적당할 때 장내 세로토닌은 분명 우리 몸을 지키는 축복이다.
하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은 오해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연구진은 2019년 리뷰에서 장내 세로토닌을 축복이자 저주라고 정리했다. 장내 세로토닌이 과도할 때 생기는 부작용은 실제로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장이 너무 빨리 움직여 설사가 나고 내장 감각이 예민해져 배가 아플 수 있다. 그래서 과민성 대장 증후군에 사용하는 세로토닌 관련 약들은 대개 세로토닌 신호를 차단하는 것들이다.
또한 장 속 세로토닌이 넘치면 뼈가 약해질 수도 있다. 뇌 속의 세로토닌은 교감신경을 조절해 뼈 형성을 돕지만, 혈액을 타고 도는 장 유래 세로토닌은 정반대로 뼈를 만드는 조골세포의 증식을 방해할 수 있다. 행복 호르몬인 줄 알고 무작정 늘리면 역설적으로 골다공증의 위험 인자가 되는 셈이다.
장에서 나온 세로토닌은 우리 몸에 유익한 호르몬인 아디포넥틴의 분비를 억제한다. 아디포넥틴은 인슐린 감수성을 높이고 지방 축적을 막는 역할을 하는데 세로토닌이 이를 방해하면 대사 장애나 당뇨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실제로 동물 실험에서 장내 세로토닌 합성을 억제했더니 고지방 식사를 해도 비만과 지방간이 예방되는 결과가 나왔다.
세로토닌은 염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 같은 염증성 장 질환 환자들의 장 조직을 살펴보면 세로토닌을 만드는 세포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만드는 과도한 세로토닌은 면역 세포를 지나치게 자극해 염증 반응을 악화시킨다.
세로토닌=행복이라는 공식은 광고 문구로는 그럴듯하지만 우리의 장 속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장내 세로토닌은 상황에 따라 소화를 돕는 충직한 일꾼이 되기도 하고, 복통과 염증을 유발하는 내부의 적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다다익선이 아니라 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