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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대공수사권 놨지만 김정은 그림자도 쫓는 정보역량 강화

중앙일보

2026.01.14 07:26 2026.01.1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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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국가정보원은 베일에 싸인 조직이다. 내비게이션에서 국정원은 검색되지 않는다. 온라인 지도에도 해당 위치는 지워져 있다. ‘가’급 국가시설, 특히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유령과 같은 조직이어서다. 막대한 비용을 쓰지만 국회가 비공개로 예산을 심사할 뿐 액수 자체가 비밀이다. 국정원 직원들 역시 없는 게 많다. 원장과 차장, 기조실장 등 인사내용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5명 안팎을 제외하곤 국정원 직원의 얼굴은 비공개 대상이다. 혹여 외부 인사들이 국정원을 찾아 기념 촬영을 하더라도 직원들은 의도적으로 빠질 정도다. 얼굴이 알려지면 향후 공작 등 임무 수행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옆 책상의 요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 건 요원들의 기본자세다. 본인의 직업을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게 평생을 음에서 살다 보니 퇴직 요원들은 현업에서 벗어나서라도 양지에서 살자는 취지로 퇴직자 모임의 이름을 ‘양지회’라고 지었다.

정보 수집과 방첩이 지상 과제
현 정부는 대북 정보 능력 강화
작년 김정은 중국행 정보 캐내
정권과 거리 두기 영원한 숙제

2018년 7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오른쪽)이 국가정보원 구내에 설치한 이름 없는 별을 바라보고 있다. 왼쪽은 서훈 당시 국가정보원장. [중앙포토]
‘이름 없는 별’의 증가
지난해 1월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한 국가정보원의 주된 업무는 해외 및 북한 정보 수집과 산업 경제 정보를 포함한 방첩기능이다. 대테러와 국제 범죄 정보를 수집하고 대비하는 것도 국정원 몫이다. 정보를 수집하는 창과 우리의 정보가 해외에 흘러나가지 않도록 하는 방패의 역할이다. 세계 각국에서 자국의 정보를 유출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커지다 보니 정보 수집 위험도는 높아졌다.

특히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선 목숨을 잃기도 한다. 대북 정보 수집요원이던 최덕근 영사가 1996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의 위조지폐 유통과 마약 거래를 추적하다 피살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국정원은 최 영사처럼 업무 중 순직한 요원을 ‘이름 없는 별’이라 부르며 국정원 구내에 별을 새기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 로비에 비밀 작전 중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석판 위에 별을 새긴 ‘추모의 벽(Memorial Wall)’과 유사하다. 2018년 7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국정원을 찾아 18개의 ‘이름 없는 별’이 새겨진 조형물 제막식을 했다. 1961년 국정원 전신인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18명이 임무 수행 중 순직했다는 의미다. 별의 숫자는 2021년까지 1개가 추가됐고, 그 뒤로도 1~2년에 1명씩 순직자가 발생했다.

“김정은을 빙의하라”
이재명 정부 들어 북한 전문가인 이종석 원장이 맡은 국정원은 대북 정보 능력 강화에 집중했다. 인공위성이나 도·감청 장비 등 기술을 활용한 테킨트(TECHnical INTelligence)는 물론 인적 정보, 소위 ‘망’으로 부르는 ‘휴민트’(HU MINT·Human Intelligence·인적정보) 확충은 현재진행형이다. 일각에서 최근 국정원이 원장의 관심 사안인 대북 정보 수집에 너무 방점을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원장이 주관하는 회의에서 북한 관련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후문이다.

대북 파트 요원들은 김정은을 빙의(憑依)해 그림자처럼 쫓아다녀야 한다는 주문을 받곤 한다. 지난해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할 것이라는 정보를 획득한 건 최근 국정원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정은이 중국행 열차를 탈 때까지 유동적이었지만 국정원은 휴민트와 테킨트를 통해 ‘정보’로 판단해 미국과 공유했고, 국회 정보위에도 보고했다. 지난해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을 계기로 북·미 정상회동을 제안했을 때도 북한 지휘부의 동향이 국정원에 포착됐다. 당시 러시아 방문을 예정했던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출장 연기를 검토했고,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경우 미국 측에서 배석할 예상자에 대한 신상 정보를 북한이 분석 중이라는 정보였다.

지난 5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국가기관을 사칭하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일으킨 스캠범죄 조직원 26명을 검거하는 과정에서도 국정원의 역할이 컸다. 2023년 말부터 캄보디아 범죄 조직의 심각성을 인식해 본부에서 요원들을 수시로 파견하며 정보력을 키운 덕이다.

다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도 지난해 8월 한국인 대학생의 사망 사건을 사전에 막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다.

들통난 임무는 ‘삑사리’
국정원이 취득한 정보가 외부에 알려지는 유일한 통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정보위다. ‘작업’ 내용이 공개되면 망이 붕괴돼 추가 임무 수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탓에 여기를 통한 공개 내용도 극히 일부분이다. 성공한 작전은 그야말로 영원히 묻히는 음지의 영역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음지에 있어야 할 국정원이 양지로 나와 조명을 받고 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의 아들이 민감한 외교첩보 내용을 의원실 보좌관을 통해 알아보려 했다는 논란이 일면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명의 변호사를 정식 직원(준법지원관)으로 고용해 요원 활동의 적법성을 따지기도 했다. 하지만 합법을 따지기에 앞서 합목적성을 띄는 게 정보의 세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보수집 활동이라도 ‘아빠 찬스’를 쓰면서 자신의 업무를 공개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의 업무 속성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쿠팡의 신상 개인 정보 대규모 유출 사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쿠팡 측에서 공개한 상황이 벌어진 것 역시 사실 여부를 떠나 미숙한 처사다. 지난 2024년 7월 미국의 기밀정보를 한국에 제공했다는 이유로 미정부가 한국 전문가 수미 테리를 기소한 사건도 어이없는 사건이다. 당시 국정원 요원들이 신용카드로 선물을 구매하며 흔적을 남겼던 내용이 기소장에 담겼다. 정보 전문가들은 이처럼 임무 내용이 알려져 ‘망’이 타진되는 사건을 통속적으로 음이탈을 의미하는 ‘삑사리’라고 부른다.

정보기관에 삑사리는 치명적이지만 이보다 더 위험한 게 있다. 정보기관이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정치가 정보기관을 활용하려는 처사다. 정보기관은 정권의 기관이 아니라 국가의 기관이어야 한다.

최근 국정원으로 대표되는 자주파와 미국을 중시하는 외교라인 즉 동맹파 간에 갈등이 감지되고 있다. 이를 간파한 미국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필요에 따라 양측을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휘부의 사적 갈등이 기관 간 갈등으로 비화하는 삑사리가 난다면 국가 전체가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다.





정용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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