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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으로 마음 그려요" 16세 지적장애 승원이, 이젠 작가입니다

중앙일보

2026.01.14 12:00 2026.01.1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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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전북 전주 누벨백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연 박승원(16)군. 중증 지적장애가 있는 박군은 23일까지 자신의 마음을 색으로 풀어낸 회화 26점을 전시한다. 사진 누벨백미술관


박승원군 첫 개인전…‘마음을 그리는 색’

친구 대신 그림을 택했던 소년이 ‘작가’가 됐다. 중증 지적장애(IQ 34 이하)가 있는 박승원(16·전주용흥중 3학년)군이 14일 전북 전주 누벨백미술관에서 자신의 마음을 색으로 풀어낸 첫 개인전을 열었다. 23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주제는 ‘마음을 그리는 색’이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결을 색과 선으로 표현한 회화 26점이 전시장 벽을 채웠다.

올해 전주양현고에 입학하는 박군은 밝은 색을 “기분이 좋을 때의 마음”, 어두운 색을 “조용해지고 싶은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일상 풍경과 동물, 기억 속 장면 등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화면에 담았다.

박승원군 작품. 게와 펭귄을 그렸다. 사진 누벨백미술관 박승원군 작품. 병오년을 상징하는 붉은 말 그림이다. 사진 누벨백미술관 박승원군이 그린 무당벌레. 사진 누벨백미술관


친구 없던 유치원생, 그림 그리며 작가 꿈 키워

그림은 박군에게 오래전부터 유일한 소통 방식이었다. 친구가 없던 유치원생 때, 혼자 크레파스와 색연필로 만화 캐릭터 등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방 안의 이불·인형·베개·거울·장난감이 모두 친구였다. 레고(블록 장난감)·클레이(점토) 작업에도 푹 빠져 지금도 책상에 그때 만든 조형물이 100개 넘게 진열돼 있다.

박군이 본격적으로 붓을 잡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다. 여러 미술학원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박군을 꺼렸지만, 현재 다니는 미술학원 원장이 “재능이 보인다”며 받아줬다. 이후 4년간 개인 지도에 가까운 수업을 받으며 ‘색감과 표현력이 뛰어나다’ ‘또래 비장애 학생보다 작품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머니 황은영(47)씨는 “승원이는 혼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법을 스스로 알아가면서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집안 환경도 박군의 예술적 감수성에 영향을 미쳤다. 꽃을 전문으로 다루는 ‘플로리스트’인 어머니·이모 밑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색을 잘 쓰게 됐다.

작가로 데뷔한 박승원군이 14일 개인전이 열린 누벨백미술관 본인 작품 앞에서 수줍은 표정으로 서 있다. 사진 박군 어머니 누벨백미술관 벽에 걸린 박승원군 작품들. 사진 누벨백미술관 박승원군 작품. 사진 누벨백미술관


학습 능력 3년 느려…“그림으로 얘기할 수 있어”

박군의 학습 능력과 사회성은 또래보다 3년 정도 느리지만, 겉모습은 차이가 없다. 외려 키 176㎝에 얼굴도 잘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혼자 밥을 먹고 서툴게나마 글씨를 쓰는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도 크게 문제없다. 다만 물건 사고 잔돈 받기, 혼자 버스 타기 등은 아직 어려운 과제다.

세 살 때부터 지금껏 언어·사회성 치료를 병행하는 이유다. 그림으로 표현한 감정을 말과 글로 풀어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전시 리플릿에 적힌 작가 노트도 이런 대화를 토대로 정리했다. 박군은 “제가 보는 세상은 작은 것들도 중요하고, 색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그림을 그릴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박승원군이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사진 박군 어머니


박군 어머니 “미술 치료 분야서 일했으면…”

이번 개인전은 박군에게 특별하다. 2023~2024년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가 주최하는 장애 청소년 우수작품 초청전 ‘나는 나야’에 공모를 통해 참여한 적은 있지만, ‘작가’로 소개되는 공식 무대는 처음이어서다. 누벨백미술관 측은 “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현재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작품의 제작 주체가 박군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작가’라는 호칭을 사용했다”며 “아마추어·프로 구분은 개인 이력과 역량 차이일 뿐 개인전으로 30점 가까운 작품을 전시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고 했다. 최영희 누벨백미술관 관장은 “박군의 작업에는 테크닉보다 먼저 마음이 닿아 있다”며 “잘 그린 그림을 넘어 정직하게 마음을 그려온 시간에 대한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황씨의 바람은 “승원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늦지만, 한 발 한 발 더 큰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고민도 내비쳤다. 황씨는 “솔직히 일반 직장을 다니긴 힘들 것 같다”며 “승원이가 어린아이·장애 아동과 잘 놀고 좋아하니, 재능을 살려 미술 치료 분야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했다.



김준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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