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g으로 15㎏을 들어올린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실로 만든 ‘근육 옷감’이 열다섯 소년의 일상에 작은 희망을 더했다. 이 기술은 2021년 5월 故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유족이 기부한 3000억원으로 출범한 ‘이건희 소아암ㆍ희귀질환 극복사업’의 지원으로 현실이 됐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명하율(15)군은 초등학생 때 듀센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았다. 근육이 점차 약해지는 희귀난치질환이다. 현재는 전동휠체어를 직접 조종해 이동하고, 일상에서는 활동보조사의 도움을 받는다. 그럼에도 중학교를 무사히 마쳤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병이 진행될수록 양치를 하거나 빗질을 하는 것처럼 평범한 동작조차 스스로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명 군은 최근 어깨 근력을 보조해주는 웨어러블 로봇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그는 “옷처럼 가볍고 간편해서 신기했다”라며 “훨씬 적은 힘으로 팔을 들어올리는 동작을 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명 군은 웨어러블 로봇 도움을 받아 스스로 일상생활하는 '평범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몸이 아프거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목사가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을 이야기했다.
이 로봇의 핵심은 근육 옷감이다. 한국기계연구원 박철훈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머리카락 굵기의 4분의 1에 불과한 형상기억합금 코일실을 직조해, 옷감처럼 가볍고 유연한 인공근육을 자동으로 연속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옷감은 10g의 무게로 10~15㎏을 들어올릴 수 있어 의복형 웨어러블 로봇의 핵심 구동기로 활용된다.
기존 웨어러블 로봇은 모터나 공압 장치를 사용해 무겁고 소음이 컸다. 실제 현장에서는 팔꿈치 등 일부 관절만 제한적으로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근육 옷감은 가볍고 유연해 관절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순응한다. 연구팀은 이를 적용해 팔꿈치·어깨·허리 3개 관절을 동시에 보조하는 의복형 웨어러블 로봇을 구현했고, 근육 사용량을 40% 이상 줄였다.
의료 현장에서도 가능성이 확인됐다. 서울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이우형 교수 연구팀은 기계연과 함께 듀센근이영양증 등 근육 약화 환자를 대상으로 초경량 어깨 보조 로봇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세계 최경량인 840g 무게의 이 로봇을 착용한 환자들은 어깨 움직임 범위가 평균 57% 이상 개선됐다. 양치질이나 식사, 머리 정돈처럼 이전에는 간신히 하거나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동작이 보다 수월해졌다는 평가다.
이 교수는 “기존 보조기나 로봇은 무겁고 비싸 실제 환자들이 일상에서 쓰기 어려웠다”며 “옷처럼 가볍게 입고 벗을 수 있으면서 능동적으로 근력을 보조해, 실제 기능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환자 뿐 아니라 고령층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의 웨어러블 로봇은 기계연 ACE사업ㆍ산업통상부 로봇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으로 개발됐고, 임상 연구는 이건희 소아암ㆍ희귀질환 극복사업을 통해 수행됐다. 희귀질환은 대상자 수가 적어 연구 과제로 채택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교수는 “즉각적으로 환자의 일상에 도움을 주는 연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가격’이다. 박철훈 책임연구원은 “현재 시판되는 능동형 웨어러블 로봇은 아무리 저렴해도 수백만원대이고, 일부 의료용 장비는 수천만~수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의 목표는 등산복 같은 아웃도어 의류 수준의 접근성이다. 박 연구원은 “자동직조 기술을 바탕으로 수십만원대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을 내면서도 가벼운 로봇, 어깨 뿐 아니라 다리·허리 등 신체 다양한 부위를 보조해주는 로봇을 만들어낸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