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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혜훈 비망록…"채변이 윤장 통화" 수사무마 청탁 정황

중앙일보

2026.01.14 12:00 2026.01.1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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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과거 자신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한 경찰 내사를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통해 무마하려 했다는 정황이 담긴 기록이 확인됐다. 실제 서울중앙지검은 2017년 해당 사건을 내사 중이던 경찰의 이 후보자 입건(정식 수사를 개시하는 것)을 3차례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입건부터 막힌 이혜훈 수사

14일 중앙일보가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이혜훈 비망록’(2017년 9월 19일)에는 “변호사가 검찰에 들어갔다 오더니 내일 입건지휘 내릴 듯. 방법 없다. 입건지휘 내리면 그 때 대응 방안 강구하자”라고 쓰여 있다. 또 “채동욱 총장께 전화, 수임해야 일 할 수 있다”는 내용도 기록됐다. 다음 날인 9월 20일 기록에는 “채변이 윤장과 통화했다 함”이라는 문구가 있다. 비망록 전후 맥락상 채변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윤장’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인 윤석열 전 대통령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에 서울중앙지검장에 취임했다. 이혜훈 비망록은 이혜훈 후보자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당시 바른정당 국회의원이자 대표였던 이 후보자가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를 통해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썼다는 의혹을 내사 중이었다. 이 후보자는 2015~2017년 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냈는데,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4월 서울의 한 상가연합회가 기념사업회에 5000만원을 기부했다. 그리고 이 후보자의 전직 보좌관 김모씨가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해당 기부금 5000만원 중 1600만원을 월급 등으로 받아갔는데, 이것이 이 후보자 정치자금으로 흘러갔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었다. 이 사건의 수사지휘는 서울중앙지검이 담당했다.



경찰 3차례 입건 요청, 검찰은 ‘보강 수사’

당시 경찰은 기부금을 받도록 주도한 보좌관 2명과 돈을 건네준 상가연합회 회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또 ‘이혜훈 의원 총선을 돕기 위해 기부금을 냈다’는 상가연합회 관계자 진술도 확보해 이 후보자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 후보자를 입건조차 하지 못했다. 검찰이 2017년 2월과 8월, 9월 등 3차례나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며 입건을 막았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기 전이었던 2017년에는 검찰이 ‘입건 지휘’ 절차를 통해 경찰 내사 사건의 입건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었다. 경찰이 사건을 정식 수사하기 전에 검사에게 정식 수사 착수(입건) 여부를 묻고, 그에 따라 입건 여부를 결정한 것이다. 수사권 조정 업무에 정통한 한 경찰 관계자는 “당시엔 검찰이 입건하지 못하게 지휘하면 따르는 게 통상적이었다. 경찰이 아무리 수사 의지가 있어도 검찰이 마음 먹으면 있는 사건을 없는 것으로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청장 “입건할 것” 밝히자, “채동욱 수임 싸인”

소위 ‘이혜훈 비망록’에는 입건이 막힌 과정에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당시 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개입한 정황이 적혀 있다. ‘이혜훈 비망록’은 날자별 메모 형식으로 기록돼 있다. 대부분이 이 후보자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구체적 내용이 담겼다.

2017년 9월 19일 비망록에는 “변호사가 검찰에 들어갔다 오더니 내일 입건지휘 내릴 듯. 방법 없다. 입건지휘 내리면 그 때 대응 방안 강구하자 ⇒ 이런 소리할 거면 비싼 변호사비 왜 받나?”라고 쓰여 있다. 또 “채동욱 총장께 전화, 수임해야 일 할 수 있다. 할 수 없이 수임 싸인(7천/ 성공보수 5천/5천)”이라는 내용도 기록됐다.
김지윤 기자

비망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후보자가 입건 될 기미가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해 채 전 총장을 급하게 변호사로 수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 해당 비망록이 쓰이기 전날인 9월 18일에 김정훈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를 가지고 “이번 주 안에 이혜훈 의원의 입건 지휘를 검찰에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변이 윤장과 통화”…다음날 검찰이 입건 거부

채 전 총장을 변호사로 수임했다고 쓴 다음 날인 9월 20일 비망록에는 “A 변호사가 공안1부에 가서 하명수사, 초고강도 장기 수사, 부당수사에 대한 설명하고 본인 진술도 듣지 않고 입건지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appeal하고 옴”이라고 적혀 있다. 문제의 “채변이 윤장과 통화했다 함” 기록이 바로 다음에 나온다. 윤 전 대통령과 채 전 총장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이자, 검찰 내에서 ‘특수통’ 라인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채 전 총장은 검찰총장이던 2013년 4월에 윤 전 대통령을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팀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채변이 윤장과 통화했다’는 다음 날인 9월 21일 기록에는 “A 변호사가 18:34에 연락옴. 검찰왈 내일 지휘 내린다. 입건허락은 아니고 수사보강지시 내린다 시간 벌게 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 당시 검찰은 이 시기에 이 후보자에 대한 경찰의 세 번째 입건 지휘 요청에 대해 ‘보강 수사하라’고 입건을 허가하지 않았다.



경찰청장까지 나섰지만 입건 3번 막혀

법조계와 경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경찰 내사 사건의 입건을 3번이나 막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특히 해당 사건은 당시 경찰 최고위층이었던 이철성 전 경찰청장과 김정훈 전 서울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곧 입건하겠다”고 수사 의지까지 밝혔었다. 하지만 첫 단계부터 차질이 생기면서 결국 수사는 동력을 잃었다. 당시 해당 사건 관련 경찰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 전이라 특히 정치인 사건은 검찰에서 허락을 안 해주면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채 전 총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내가 속한 법무법인 서평에서 해당 사건을 수임한 것은 맞다”면서도 “내가 그 사건 수행 변호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윤 전 대통령에게 전화하거나 뭔가 역할을 한 것은 없다”고 해명했다.



장관, 청와대에도 사건 관련 접촉 정황

비망록에는 당시 사건 관계인들의 경찰 수사 진술 내용, 대응 전략 등 이 후보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밀한 내용이 다수 담겨 있다. 또 이 후보자가 윤 전 대통령과 채 전 총장뿐 아니라 다른 유력 인사에도 해당 사건에 대한 도움을 부탁한 정황이 나온다.

2017년 9월 14일 비망록에는 B의원이 “C장관에게 이철성 청장의 부당수사에 대해 말해 줌”이라고 쓰였다. 또 2017년 9월 29일 비망록에선 당시 청와대 유력 인사 D씨의 최대 후원자를 통해 경찰 수사 부당함을 전달했다는 대목도 기록돼 있다. 고위경찰 출신 동료 의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변호사와 대응 논의 내용도 적혀 있다.

B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 후보자가 당시에 나를 만나 해당 사건 관련 너무 억울하다며 하소연한 기억은 있다”면서 “다만 너무 오래전이라 C장관에게 내가 사건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천하람 국회의원은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이 후보자는 비망록에 자신의 형사사건을 덮기 위해 어떻게 동료 국회의원, 고위 검사, 청와대 유력인사, 장관을 접촉했는지 소상히 기록했다”며 “사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민주당이 뿌리 뽑겠다던 권력형 비리이고 사건의 암장 아니냐”고 말했다. 천 의원은 “심지어 비망록 중에는 고위 경찰 출신인 국회의원도 ‘활용’하겠다는 내용까지 담겨있다. 후보자는 기획예산처 장관은커녕 어떠한 공직에도 적합하지 않은 윤리관을 가진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 측은 “채 전 총장을 변호사로 선임한 적도 없고, 윤 전 대통령에게 사건 청탁을 한 적도 없다”면서 “해당 사건은 혐의가 없다고 끝난 사안”이라고 밝혔다.



김남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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