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 골프의 간판 중 하나였던 브룩스 켑카가 PGA 투어 복귀를 전격 선언하며 골프계의 권력 지형은 PGA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승기를 잡은 PGA 투어는 여세를 몰아 LIV에 남은 핵심 스타들에게 2월 2일까지 돌아오라며 전례 없는 복귀 최후통첩을 보냈다.
업계의 시선은 이제 브라이슨 디섐보에게 쏠려 있다. 냉정하게 보면 존 람이나 캐머런 스미스는 PGA 입장에선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인 카드지만, 디섐보는 필수 자산이다. 디섐보는 최장타에 메이저 대회마다 우승 경쟁을 펼치며 로리 매킬로이 등 PGA투어 간판 선수들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260만 명의 유튜브 구독자를 거느린 문화적 아이콘이자 플랫폼형 선수라는 점은 그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 디섐보는 단순한 선수를 넘어 골프에 무관심하던 MZ세대를 필드로 불러모으는 유일한 창구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보수 팬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타이틀리스트 프로 V1x 레프트 대쉬(Left Dash) 볼이 미국 전역에서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다.
사실상 LIV의 타이거 우즈 격인 그의 영향력은 이미 필드 밖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가 없으면 LIV의 화제성은 제로에 가깝다.
LIV에게 디섐보의 이탈은 단순한 선수 유출을 넘어 리그의 붕괴를 의미한다. 만약 그가 켑카의 뒤를 따른다면 LIV는 동력을 잃고 마이너 리그로 고립되며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0억 달러 요구설과 소셜미디어 심리전 미국 골프 채널 등에 따르면, 디섐보는 올해 말 계약 만료를 앞두고 LIV에 10억 달러(약 1조 4700억 원) 이상의 재계약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사된다면 메이저리그 오타니 쇼헤이의 7억 달러 등을 가볍게 뛰어넘는 스포츠 사상 최고액이다.
세계 랭킹 1위 경험도 없는 그가 이런 액수를 요구했다는 건 황당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일리가 있다. 실력에 대한 보상에 더해 LIV의 존속 가치와 PGA의 승리 확정 비용이 합쳐진 전략적 몸값이기 때문이다.
디섐보는 영리하다. 자신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안다. 최근 그는 소셜미디어에 EXIT(출구) 표지판 앞에서 어깨를 으쓱하는 사진과 함께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팬들과 양대 기구를 동시에 흔들었다. 협상력을 극대화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낙동강 오리알 리스크 vs 독자 생존의 무기 디섐보는 2월 2일까지 돌아오라는 PGA 투어의 최후통첩을 일단 거부하고 LIV와의 협상에 집중할 태세다. 물론 리스크도 존재한다. LIV가 10억 달러라는 액수에 부담을 느껴 계약을 포기하면 자칫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
PGA 투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LIV의 붕괴이고 디섐보 영입은 선택 사항이다. PGA 투어로서는 소속 투어가 없어진 디섐보가 결국 스스로 투항해 오기만을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디섐보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다. 그는 투어 소속 없이 메이저 대회와 유튜브 활동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독자 노선을 시사했다. 이는 전성기 시절 타이거 우즈가 특정 기구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회만 골라 나가려 시도했던 이른바 '타이거 투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디섐보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무기다.
요즘 그의 유튜브 조회수와 인기로 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결국 칼자루는 디섐보가 쥐고 있으며, 이번 전쟁의 최종 승자는 그가 될 가능성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