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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국가주석 절친…중국 ‘바둑의 성인’ 녜웨이핑 별세

중앙일보

2026.01.14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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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바둑 챔피언 녜웨이핑 9단이 14일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중국신문사
중국 바둑의 최고봉으로 1980년대 세계 바둑계를 평정했던 ‘바둑의 성인’ 녜웨이핑(聶衛平·섭위평) 9단이 14일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74세.

1952년 과학자이던 부친의 근무지였던 랴오닝 선양에서 태어난 녜 9단의 고향은 허베이성 선저우다. 9세 때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1962년 10세 때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 대회에 참가해 아동조 3위에 입상했다. 당시 천이(陳毅) 원수에게 트로피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바둑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1985년 제1회 중·일 바둑 수퍼대항전에서 당대 최고수였던 고바야시 고이치, 가토 마사오, 후지사와 히데유키 9단을 차례차례 격파하며 중국에 첫 우승을 안겼다. 이후 1988년 4회 대회까지 일본을 상대로 11연승을 거두며 중국인에게 ‘극일(克日)’의 상징이 됐다. 그해 중국국가체육위원회는 녜 9단에게 ‘바둑의 성인’을 뜻하는 ‘기성’ 칭호를 부여했다.
지난 1983년 중국의 바둑 챔피언 녜웨이핑(왼쪽)이 홍콩의 무협소설가 진융(오른쪽)과 대국하고 있다. 홍콩 성도일보 캡처

녜 9단의 바둑 인생은 1989년 한국의 조훈현 9단과 승부로 전환기를 맞았다. 제1회 응창기배 세계대회 결승전 5판 3선승제에서 녜 9단은 조 9단을 상대로 2승 1패로 앞서고 있었다. 마지막 두 경기는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경유지 방콕을 도착지로 여긴 녜 9단이 출국장으로 나가면서 컨디션 난조를 보여, 결국 조 9단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당시 대국은 드라마로 만들어진 웹툰 ‘미생’이 매 회마다 두 9단의 제5국 기보를 인용하면서 한국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중국 차이신은 부고에서 당시 시합을 소개하며 “한국 바둑이 세계를 지배한 20년의 시작을 알린 승부였다”며 “중국 바둑의 도약과 침체, 양대 전환점이 모두 녜웨이핑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회고했다.

녜웨이핑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베이징 25중학을 함께 다닌 동창생이다. 2015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녜 9단은 “문화대혁명 때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다”고 말했다.

바둑은 녜 9단과 시 주석을 잇는 코드였다. 칭화대를 졸업한 시 주석이 부친인 시중쉰(1913~2002)의 전우였던 겅뱌오(1909~2000) 부총리 겸 국방부장의 비서로 일할 때다. 바둑 애호가인 겅 부장은 모든 참모에게 전략적 사고에 도움이 된다며 바둑을 권했다. 시 주석은 틈틈이 녜 9단을 찾아가 바둑을 배웠다. 녜 9단은 지난 2013년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그(시진핑)는 바둑 수준을 높일 지름길을 원했지만, 안 가르쳐줬다”며 “실력이 아직 안 되는데 나가서 괜히 내 체면만 깎을까 봐”라며 우정을 과시했다.
지난 2023년 7월 중국 인공지능(AI) 전문 기업 센스타임이 개발한 바둑 로봇과 인간의 대국 해설위원으로 참가한 녜웨이핑 9단이 기자실에 들어와 인사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녜 9단은 바둑의 대중화에 힘쓰는 한편 인공지능 알파고 등장 이후 침체에 빠진 바둑계의 활로 찾기에도 힘썼다. 중국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창하오(50), 구리(43) 등 차세대 기사를 양성했다. 지난 2023년 AI 기업인 센스타임이 주최한 인공지능과 인간 대국에 해설위원으로 참가해 AI와 경쟁하는 바둑기사들을 응원했다.

지난 2013년 직장암 수술을 받은 녜 9단은 투병 기간에도 바둑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지난해 3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12일간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재활치료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신경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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