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국 야구팬은 KBO리그만큼이나 일본프로야구(NPB) 경기를 자주 봤다. '국민 타자' 이승엽(50)이 NPB 최고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제70대 4번 타자'로 활약하던 시절. 카리스마의 상징인 하라 다쓰노리 감독, 사람 좋은 인상의 주전 포수 아베 신노스케, '검객'이라 불리던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 '이승엽의 동료들'도 웬만한 한국 선수 못지않은 명성과 인기를 누렸다.
그 후 20년이 흐른 2026년, 이승엽이 다시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고 도쿄돔 더그아웃에 선다. 그때 절친한 동료였던 요미우리 아베 감독이 한국인 이승엽을 1군 타격코치로 불러들였다. NPB에서 지도자 인생의 새 출발을 앞둔 이승엽 코치는 중앙일보와 만나 "요미우리라는 팀에서 코치를 한다는 건 내게도 큰 영광이다. 올 한해는 아베 감독을 도와 팀이 좋은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선수 이승엽은 찬란했다. 한국 야구에 숱한 '8회의 기적'을 선물한 국가대표 4번 타자였고, 쳤다 하면 담장을 넘기는 홈런의 상징이었다. 지도자 이승엽은 가시밭길을 걸었다. 2023년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한 번도 '완전체' 전력으로 팀을 이끌어보지 못했다. 두산이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첫 관문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물러나자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계약 마지막 시즌이던 지난해 6월 2일 자진 사퇴했다. 선수 시절 박수와 찬사에 익숙했던 그는 두산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의 6개월을 "성찰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한두 달 정도는 사람도 거의 안 만나고 집에 자주 있었어요. 그때 구단 차량을 반납해서 한 3주 정도는 '뚜벅이'로 지냈는데, 백팩 하나 매고 여기저기 혼자 돌아다니기도 했고요. 차가 생긴 뒤엔 고향 대구에 내려가서 지인이나 친구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얘기도 들어보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봤죠. 두산에서의 시간뿐 아니라 제 인생 자체를요. 아주 큰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이 코치는 '나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들에게 관대하자'는 마음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 한 팀을 이끄는 감독이 된 뒤에도 그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선수들은 야구장에서 마음껏 뛰면 되고, 모든 책임은 감독인 내가 지면 된다'는 마음. 그러나 이제는 "선수와 감독의 원칙은 달라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앞으로는 제가 조금 더 강해져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너무 컸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내가 더 엄격하고, 더 의심하고, 더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코치들이나 선수들이 좀 피곤해하더라도,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조금 더 결과에 몰입하면서 더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부분도 필요하지 않았나 싶어요.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리더와 직접 겪은 현실 사이에 격차가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코치는 그때 "야구를 쉬지 않고 계속 봤다"고 했다. "전 야구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KBO리그 5경기를 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가더라고요. 그러다 슬슬 '나도 이제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참에 아베 감독 생각이 났어요. 제가 부탁해서 요미우리 가을(마무리) 캠프에 임시 코치로 합류하게 됐죠."
지도자 생활을 '감독'으로 시작한 이 코치는 직접 선수들의 타격 훈련 스케줄을 짜고, 한 명 한 명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면서 고민을 듣고 조언하는 코치 일에 새삼 재미를 느꼈다. 그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3주 동안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봤더니, 모처럼 시간이 참 빨리 가더라"며 "새삼 내가 야구를 좋아하긴 하는구나 싶었다. 귀국을 앞두고 아베 감독이 감사하게도 (다음 시즌 코치) 제안을 해주셔서 고맙고, 의욕이 생겼다"고 돌이켰다.
그때 일본 행을 망설였던 이유는 단 한 가지. 몇 년째 병상을 지키던 아버지가 생각나서였다. 열정과 헌신으로 '홈런왕 이승엽'을 키워낸 부친 이춘광 씨는 오랜 투병 끝에 지난해 12월 2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2006년 어머니를 잃고 아이처럼 울었던 막내아들은 그 뒤를 따른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는 제게 거대한 산이셨고, 나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주신 분입니다. 몇 년 전부터 거의 대화를 하실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그렇게 계셔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는데…. 그 슬픔을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그 아픔을 이겨내면서 다시 한번 성숙해졌고, 아내와 세 아들에게 더 강하고 당당한 가장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제 부모님이 두 분 다 안 계시니,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개 숙이지 않고 그 빈자리를 제가 잘 채울 생각입니다."
도쿄돔을 홈으로 쓰는 요미우리는 야구가 '국민 스포츠'인 일본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팀이다. 한때 "일본 국민의 70%가 요미우리 팬"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지금은 다른 구단들 인기도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전 세계 야구단 중 유튜브 구독자 수(15일까지 73만여명) 1위를 자랑한다. 이 코치는 "요미우리에서 뛸 때 늘 '어린이 팬들이 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말고, 그라운드 안팎에서 품행과 복장을 단정히 하고 모범을 보이라'는 당부를 들었다"고 했다.
선진 야구는 선수와 지도자의 시야를 넓힌다.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고 선수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이룬 '국민 타자'는 이제 더 좋은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한 자양분을 흡수하러 다시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승엽'은 여전히, 한국 야구에서 무척 특별하고 중요한 이름이다.
"저는 어릴 때부터 야구 선수가 꿈이었고, 야구 유니폼을 입는 게 가장 즐겁고 행복했어요. 올해는 요미우리에서 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또 언젠가 한국 야구를 위해 제 미약한 힘이라도 보탤 수 있도록 잘 살아가겠습니다. 무엇이든, 저는 언제나 야구와 함께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