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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재무장관 구두개입도 안 먹혔다…정부, 최악 환율과의 전쟁

중앙일보

2026.01.15 01:21 2026.01.15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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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계기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과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재무부 장관의 국내 외환시장에 직접 ‘구두개입’을 하는 이례적 조치로 달러당 원화 가치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상승해(환율은 하락) 마감했다. 외환당국이 연이어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원화 약세 흐름이 꺾이지 않자 미국의 ‘입’을 빌려서야 겨우 제동을 걸었다. 이런 한·미 연합작전도 효과가 크지 않았고, 원화값은 1470원 선에 다시 근접했다.

15일 달러당 원화 가치는 전날보다 7.8원 상승한 1469.7원에 거래를 마쳤다(환율은 하락). 이날 달러당 원화값은 전날보다 12.5원 오른 1465원에 개장한 뒤, 장 초반 한때 1457.5원까지 급등했다. 간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국내 외환시장을 겨냥해 이례적인 ‘구두개입’성 메시지를 내놓은 영향이다. 구두개입은 외환시장 흐름에 영향을 주기 위해 당국자가 내놓는 성명이나 공식적인 발언을 뜻한다.

베센트 재무장관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최근 원화 평가절하는 한국의 견조한 경제 기초 여건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 미국 재무장관이 한국 외환시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개입성 언급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획재정부는 “미국 측에 별도의 요청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시장에서는 당국의 고강도 대책과 구두개입이 효과를 내지 못하자 미국이 ‘지원 사격’에 나선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배경으로는 한국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계획이 꼽힌다.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에 따르면 원화 가치 약세가 심화할 경우 연 최대 200억 달러 규모로 정한 대미 투자 금액의 조정을 미국에 요청할 수 있다. 한국의 대미 투자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에 원화 약세는 미국에도 부담이다.

실제로 베센트 장관의 발언 한마디에 달러당 원화 가치는 14일 역외 시장에서 10원 가까이 급등했다. 이날 주간 거래에서도 올해 들어 처음으로 상승하며 장을 마쳤다. 지난 8일 원화 가치가 6거래일 연속 하락하던 당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구두개입에 나섰음에도 원화 약세 흐름을 멈추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베센트 장관의 발언의 효과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달러당 원화 가치는 오후 들어 다시 1470원대로 다시 내려앉으며 장 초반의 상승분을 반납했다. 오전에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1480원대 환율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발언했고, 오후에는 재경부 최지영 국제경제관리관이 “현재 환율은 과열된 수요가 주도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내내 외환당국 관계자들이 이 같은 개입성 발언을 이어갔지만 시장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원화 약세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최지영 재경부 국제경제관리관은 “국민과 금융기관을 포함해 환율이 계속 절하될 것이라는 믿음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이 다시 환율을 끌어올리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정부가 시장의 기대심리 관리에 실패했다는 의미다.

연초 들어 서학개미들의 해외 주식 투자 열기도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이날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올해 1~14일 미국 주식을 22억3900만달러(약 3조3000억원) 순매수했다. 보험료 납입과 지급이 모두 달러로 이뤄지는 달러보험 판매가 급증하고, 달러예금 잔액도 불과 일주일 새 1조원씩 늘어나는 등 국내 투자자들의 ‘달러 사재기’ 열풍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날 은행·증권사 등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거시건전성 조치를 추가로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과거 은행 외화부채 부담금이나 선물환 포지션 한도 설정 등이 활용된 바 있다. 금융기관에 대한 조치는 수수료 인상 등으로 개인 거래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당장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만한 조치는 아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이를 두고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지난해 대부분 소진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최 관리관은 “달러 공급은 충분해 당장 통화스와프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정부의 환율 통제력이 더 약화할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한국 정부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해 오는 7월부터 외환시장을 24시간 개방하고 역외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하면서 외환시장 관리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니엘 모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미국이나 중국 같은 거대 경제권은 시장 충격을 흡수할 체급이 되지만,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개방과 통제를 동시에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단기적·즉발적 대응이 아니라, 일관성을 갖춘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일관된 정책 대응을 통해 경제주체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상시적인 외환 개입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규칙 기반의 운영과 정책 집행의 투명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강성진 교수는 “정부가 서학개미를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이는 객관적으로 투자자 입장에서 한국 시장의 매력이 낮아진 결과”라며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국내 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도 “달러 수요가 줄어들려면 한국에 투자할 유인이 있어야 하는데, 세금과 노동시장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노력이 없다면 흐름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간 ‘공조 체계’의 중요성도 제기된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환당국의 컨트럴타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과 관련해 “기관 간 공조 체계를 확립해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연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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