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이름은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다. 상품의 경우는 특정 제품명이 같은 품질이나 가치를 의미하지만, 사람은 이름이 같더라도 동일 인격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름은 특정인의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는, 일종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이순신처럼 존경의 상징일 수도 있지만, 이완용처럼 치욕의 대명사가 되는 것처럼 살아온 삶에 따라 이름의 가치가 바뀌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일부러 평판이 나쁜 이름을 짓거나 가지려는 이들은 없다. 독일에서 아돌프는 흔했던 이름이었으나, 현재는 기피하는 것처럼 외국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일부 계층은 이름을 너무 귀하게 여겨서 타인이 함부로 언급하지 않도록 호(號), 휘(諱), 자(字) 등을 별도로 사용했다. 이처럼 중요하니 한번 정해진 이름을 어지간하면 지키려 한다. 물론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으나 이름을 사수하고자 쓰지 않아도 되는 노력을 낭비하기도 한다.
의외로 이런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군(軍)이다. 군의 활동 단위인 부대는 필요에 따라 창설·해체가 이루어진다. 특히 전시라면 수시로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가변적인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부대의 이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경이로울 정도다. 어쩌면 그 정도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군에게는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금기시하거나 지키는 것도 많다.
국군의 경우 단대부호에 4자를 피한다. 사(死)와 발음이 같아서라고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그것보다는 창군 초기 벌어졌던 여순사건 당시 제4연대와 제14연대가 반란의 주역이었던 나쁜 기억 때문이다. 한국전쟁 중 해체와 다름없는 패배를 당한 부대들도 나중에 재건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패배가 차라리 반역보다는 낫다는 의미다. 그 정도로 국군에서 4자에 대한 반감은 집요할 정도다.
외국도 부대명과 거기에 담겨있는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마찬가지다. 1965년 한국에 주둔 중이던 미 제1기병사단이 본토로 철수하고 대신 미국에 배치되어 있던 미 제2보병사단이 한국으로 이동했다. 단순히 두 부대가 맞교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전시에도 부대 재편 등을 위해 수시로 부대가 작전 지역을 바꾼다. 더구나 제2보병사단은 6·25 전쟁에서 활약했고 1954년까지 주둔했기에 한국이 낯선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에 돌아간 제1기병사단은 불과 석 달 만에 다시 태평양을 건너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었다. 3개월이 짧은 시간은 아니나 그렇다고 사단급 부대가 대륙을 건너 주둔지를 바꾸기에는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더구나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짐을 꾸려 태평양을 반대로 건너 아시아로 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합리적이지 않다. 일단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복잡하게 그럴 필요 없이 미군을 베트남에 파병해야 한다면 본토에 있던 제2보병사단을 보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아니면 굳이 제1기병사단을 보내야만 할 이유가 있다면, 한국에서 직접 베트남으로 보내고 제2보병사단을 한국으로 보내는 대안이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두 부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는 부대명에 담겨있는 전통을 지키려는 미군의 유별난 고집 때문에 벌어진 일종의 착시다.
실제로 한국 주둔 미군 부대는 변동이 없었다. 단순히 미국 본토에 배치한 부대가 베트남으로 전개한 것이다. 다만 서류상으로는 엉뚱한 모양이 됐던 것은,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다. 1963년 미군은 기존 사단 중 하나를 헬기를 이용해 강습 전개가 가능한 새로운 개념의 기동 부대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어느 사단을 개편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기병대의 전통을 승계한 제1기병사단이 뭔가 이치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해당 부대는 한국에 주둔 중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철군하고 다른 부대를 한국에 보내는 것은 앞서 언급처럼 불합리했다. 이에 본토의 제2보병사단을 제1기병사단으로, 한국에 주둔한 제1기병사단을 제2보병사단으로 이름만 바꾸기로 결정했다. 즉 병력·장비·시설 같은 하드웨어는 그대로 두고 부대명·역사·전통 같은 소프트웨어만 교환한 것이다. 그래서 서류상으로 제1기병사단은 본토로 이전했고, 석 달 후 베트남 전쟁에 투입된 것이다.
국군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 1973년 베트남에서 철군한 수도사단은 제32사단 주둔지에 새롭게 자리 잡았다. 대신 국군 최초로 기계화사단으로 개편했던 제32사단은 다시 향토사단으로 바뀐 뒤 국군의 월남 파병 이전에 주둔했던 충남 연기로 복귀했다. 그곳에 있던 제51사단은 경기도로 전개했다. 이처럼 연쇄적으로 부대 이동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나 서류상으로 그렇게 바뀐 것뿐이었다.
베트남에서 순차적으로 철군했기에 수도사단은 귀국 당시에 실체가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워낙 역사적 위상이 큰 부대라서 제32사단을 수도사단으로 바꾸고 대신 제51사단을 제32사단으로, 제99여단을 제51사단으로 변경했다. 이처럼 이름은 희한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사수하려는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의 가치와 명예를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다. 이것이 없다면 오명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