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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빈의 수장고 안팎 훑기] 관람자의 지각 한계 시험하는, 쿨하디 쿨한 풍경 사진

중앙일보

2026.01.1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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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로 거래되는 사진작가 구르스키의 세계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눈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겨울은 우울하기 그지없는 시기이다. 생애 주기에 비유하면 죽음에 해당하는 계절.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시들 확률도 높아진다. 이따금 내리는 눈이 세상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꿔 놓으면 겨울이 죽음의 계절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수 있다.

그래서 겨울 풍경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화가라면 한 번쯤 겨울 풍경을 그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고 안에도 겨울 풍경을 담은 작품이 수십 점 있다. 그중 가장 비싼 작품은 놀랍게도 유화가 아니고 사진이다. 작가는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얼어붙은 강 위에서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으로 4m가 넘는 대작이다. 현재 과천관에 전시되어 있다.

디테일 낱낱이 살린 소비사회 풍경
한눈에 못 담는 거대한 시각정보

4m 넘는 대작 ‘얼음 위의 사람들’
코로나 시기 역설적인 유대감 포착

객관적 거리 위해 ‘새의 시선’ 애용
8만 명 동원한 평양 카드섹션 촬영

‘라인강 II’, 1999.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구르스키는 생존하는 사진가 중 작품 가격이 가장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2011년에 라인강을 담은 사진이 당시로는 사진 역대 최고가인 약 430만 달러(현재 환율 기준 62억)에 경매에서 팔렸다. 실제 풍경에서 건물과 인물을 모두 지우고 완벽한 수평 구도로 만들어 추상화처럼 보이게 한 작품으로 역시 3.5미터가 넘는 대작이다.

구르스키는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을 만드는 작가가 되었을까? 그 성공의 비결은 한마디로 스케일과 태도, 그리고 주제라는 삼박자의 탁월한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상업사진가였던 조부와 아버지
구르스키의 사진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풍경을 절묘하게 담아낸다는 평을 받는다. 그리고 그가 생각한 현대 사회는 인간의 통상적인 지각 능력과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엄청난 규모와 복잡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점을 마치 그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외부인의 시선인 듯 무심하게 담아내는 데 구르스키 사진의 특징이 있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1955년에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상업사진가였다. 아버지의 사진 스튜디오는 어린 구르스키의 놀이터였다. 아버지가 특히 잘 찍은 것은 맥주 광고. 글리세린을 이용하면 스튜디오 조명의 열기 아래에서도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어린 구르스키는 매혹되었다. 특히 조명을 통해 분위기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뒤셀도르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예술대학에 진학하면서 사진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법을 배운다. 현대 사진의 판도를 바꾼 두 인물, 베른트와 힐라 베허 부부를 교수로 만난 것이다. 그가 이전까지 알던 사진이 기술이었다면 베허 부부에게 사진은 개념, 그리고 태도였다.

베허 부부는 작업 방식이 독특하고 엄격했는데, 한마디로 중립적 태도를 지향한 건조한 사진들이었다. 그들은 공장지대의 산업건축물만 촬영했고, 빛이 들어가면 감정이 자극된다고 하여 항상 구름 낀 날을 고집했다. 정중앙의 시선, 일정한 높이에서 찍은 이 흑백의 사진들은 유형학적 사진, 무표정(deadpan)의 사진이라고도 불렸다.

이는 이전까지의 사진이 빛의 효과나 대상과의 교감에 집중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이보다 더 쿨할 수 없는 사진의 등장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구르스키는 베허 부부에게서 감정을 배제한 거리두기, 그리고 반복되는 패턴과 구조를 이용하는 방식을 배웠다. 초반에는 대학에서 배운 대로 합성이나 조작을 하지 않는, 소위 스트레이트 사진을 고집했다. 그런데 이탈리아를 차로 여행하던 중, 그는 거대한 항만을 위에서 본 풍경에 압도되는 경험을 한다. 컨테이너와 차량이 엄청난 규모로 집적되어 있는 광경을 내려다본 순간 그의 예술은 완전히 달라졌다. 산업시대의 미학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도쿄의 주식 거래소, 지멘스 공장, 대형 마트 등을 찍었다. 세계화와 자본주의, 소비주의가 지배하는 동시대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감과 날카롭고 선명한 디테일을 모두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디지털 수정을 시작했다. 사진의 크기도 점점 커졌기 때문에 디지털 후작업에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소비주의 스펙터클 표현한 ‘99센트’
‘99센트’, 1999.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대형마트의 진열대를 촬영한 ‘99센트’는 소비주의 시대의 스펙터클을 표현한 사진으로 유명하다. 수평을 정확히 맞춘 구도와 다채로운 색깔 때문에 얼핏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익숙한 브랜드의 포장지가 보인다. 디지털 후작업으로 상품 하나하나의 디테일을 선명하게 다듬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절대 한눈에 담을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시각정보가 담겨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 글로벌 자본주의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휴먼 스케일을 넘어서는 압도적 규모 이면에는 상품의 포장지를 봐도 장소를 짐작할 수 없다는 특징이 숨어 있다. 세계 어디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몰개성적인 공간 또한 우리 시대의 현실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얼핏 추상화처럼 보이는 느낌도 틀리지 않은 셈이다. 추상화는 내용이 아닌, 형식에 집중하는 그림이다. 그리고 우리는 개별적인 내용보다는 거대한 구조, 즉 대량생산과 소비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평양 VII’, 2007.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런 개념에 인간을 대입시킨 것이 ‘평양’ 연작이다. 구르스키는 2007년에 단체 여행단의 일원으로 5일간 평양을 방문했다. 김일성 주석 기념행사인 아리랑 축제를 찍기 위해서였다. 사진은 5만 명의 무용단, 그리고 3만 명의 초등학생이 동원된 카드섹션으로 이루어진 공연 장면이다.

작가는 여행단을 인솔한 가이드에게 부탁하여 최대한 높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평론가는 “김일성 주석이 자신에게 바쳐지는 공연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구르스키는 군중을 촬영할 때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 소위 ‘새의 시선(Bird’s Eye View)’이라 불리는 구도를 즐겨 썼다. 그런데 그의 사진에 대해서는 “새가 아니라 신의 시선” 혹은 “지구에 막 도착한 외계인의 시선”이라는 평이 종종 따라붙는다. 인간 사회의 모습 혹은 현대 문명의 단면을 어떤 초월적 존재가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구르스키의 사진에서 대상과의 거리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거리는 관람자가 자신만의 의견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가까이서 찍으면 촬영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세부 사항에 휘둘리지만, 멀리서 찍으면 비로소 그 대상의 구조와 본질이 보인다는 뜻이다.

‘얼음 위의 사람들’, 2021,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얼음 위의 사람들’ 역시 단순한 겨울 풍경 사진은 아니다. 2021년의 어느 겨울날, 갑작스럽게 내린 비로 라인강이 범람하고 한파가 몰아쳤다. 강변이 모두 얼어붙고 눈까지 내리자 사람들은 썰매와 스케이트, 그리고 아이스하키 장비를 들고 나왔다. 처음엔 한두명이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사람이 늘었다. 코로나19 거리두기 때문에 실내에서 모이지 못하던 시기, 야외에서 오히려 조용한 유대감이 생기는 때였다.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이 사진은 2021년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동시에 과거를 참조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16세기에 활동한 플랑드르 화가 브뤼헐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독특한 화풍으로 당대 풍속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브뤼헐은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겨울 풍경화를 몇 점 남겼다.

브뤼헐의 겨울 풍경 그림과 닮은꼴
플랑드르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새덫이 있는 겨울 풍경’, 1565, 벨기에 왕립박물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브뤼헐의 1565년작 ‘새덫이 있는 겨울 풍경’은 얼어붙은 강 위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풍경을 담고 있다.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 팽이를 돌리는 아이들이 보인다. 화면 오른쪽 강둑에는 새들이 커다란 새덫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다. 놀이에 몰두한 사람들과 모이에 집중한 새들이 대비되어 어떤 우화적 성격이 있다고 추정되는 독특한 그림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 때문에 더 그렇다.

브뤼헐과 구르스키의 겨울 풍경은 모두 군중을 담고 있지만 이들이 제각각 분리되어 있다. 이들은 아마 각자의 놀이에 집중하느라 아마 옆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제각각 떨어져 있는 이들도 멀리서 보면 모두 연결돼 있다. 그리고 새덫, 바이러스와 같은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이런 위험이 닥치면 원래 개별적 존재였던 우리는 운명 공동체가 된다. 밤사이 내린 눈이 세상을 하나의 색으로 뒤덮듯이 말이다.

이는 브뤼헐의 16세기나 벌써 5년 전이 되어 버린 2021년, 그리고 미래에도 똑같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가끔 떠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사실 모두 연결돼 있고 우리들 각각이 이 시대를 정의하는 풍경을 만들고 있다고.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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