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싱가포르의 센토사 골프 클럽에서 열린 LIV 골프 대회 현장. 취재 도중 만난 대회 조직위원회 관계자가 한 선수를 가리켰다. 표정 변화 없는 얼굴, 한쪽 팔을 뒤덮은 문신 그리고 포니테일로 묶었지만 여기저기 삐져나온 잿빛 곱슬머리. 직접 본 그의 첫인상은 정돈되고 잘 차려진 골프장 분위기와는 사뭇 이질적이었다.
앤서니 김(41·미국). 한때 ‘타이거 우즈의 후계자’로 불리며 전 세계 골프 팬들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그러다 어느 날 신기루처럼 모습을 감췄고, 무려 12년간 두문불출했다. 2년 전, 이번엔 전격 컴백해 또 한 번 대중을 놀라게 했다.
그의 커리어는 ‘천재의 몰락’이라는 표현으로 갈음된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신인이던 지난 2007년 2승을 거둘 때만 해도 거칠 게 없었다. 이후 세계 랭킹을 6위까지 끌어올렸다. “나는 호랑이(타이거 우즈) 잡으러 온 사자”라 일갈했으니, 재능뿐 아니라 스타성까지 흘러넘쳤다.
하지만 이른 성공은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2010년부터 크고 작은 부상과 함께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2년 아킬레스건을 다친 뒤 좀처럼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자 그는 골프채를 집어 던지고 은둔을 시작했다. 회복에 힘써야 할 시기에 회피를 택했다.
그렇게 마침표를 찍은 듯했던 앤서니 김의 골프 인생 시나리오는 2년 전 필드 복귀와 함께 속편으로 접어들었다. 처절한 자기 고백과 반성도 뒤따랐다. 그는 “한때 술과 약물에 의존했고, 지독한 자살 충동에도 시달렸다”면서 “내 인생의 가장 큰 성취는 알코올과 약물을 끊은 것이다. 가족의 응원 덕분에 가능했다”고 털어놓았다. 선수로서 실패보다 인간으로서 약점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게 어쩌면 더 힘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냈다. 바로 그 순간이 재기의 출발점이 됐다.
드라마 같은 부활 스토리는 아직 없다. 지난 2년간 LIV 골프 무대에서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지만, 지난해 말 ‘퇴출’ 도장이 찍힌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호랑이 잡으러 왔다”던 그 청년은 어느덧 40대 아저씨가 됐다. 경기력과 스코어 또한 전성기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최근 LIV 골프 무대를 다시 노크하기 위해 프로모션(승격) 대회에 참여했고, 3위에 올랐다. 상위 3명까지 주어지는 2026시즌 와일드카드 출전권을 확보해 올해도 도전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앤서니 김이 완성형 서사를 이루기까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이제 그는 참고 견디고 극복하는 방법을 안다. 그의 도전뿐만 아니라 또 다가올지 모를 좌절과 실패까지도 응원한다. 그 길의 끝자락 어딘가엔 분명 성공이 기다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