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성과를 꼽으라면 조세이 탄광 수몰자 DNA 감정에 양국이 협력하기로 한 점이다.
조세이 탄광 사고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으로 석탄 채굴에 열을 올리던 시기, 야마구치현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해저 탄광을 무리하게 채굴해 지반이 약해졌고 결국 1942년 2월 3일 바닷물이 갱도로 침투했지만 183명이 빠져나오지 못했다. 조선인 광부는 136명이었다.
일본에서조차 잊힌 사건이었다. 이 역사를 알리고 유골 발굴을 위해 애썼던 것은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라는 일본 시민단체였다. 희생자 신원을 모두 파악했고, 2024년엔 갱도 입구를 발견해냈다. 이후 잠수부를 동원해 유골 발굴에 지속적으로 나선 결과 지난해 8월, 유골 4점을 육지로 끌어올렸다.
유골은 일본 경찰에 인계됐지만 DNA 감정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선 유골 감정부터 협력하기로 한 점을 인도주의적 성과로 꼽았다. 시민단체도 정치적 합의가 추진동력이 된다며 기대해온 만큼 이번 성과를 깎아내릴 순 없다. 그럼에도 유골이 땅 위에 있었던 5개월 동안 일본 정부의 태도는 바다 밑에 그대로 가라앉아 있었다. 한국과의 외교적 스킨십을 위한 카드로 끌어올려지기 전까지, 그것도 시민단체가 여태껏 고군분투한 노력의 결과가 버젓이 나와 있는데 말이다.
시민단체가 지금껏 유가족들을 접촉하며 확보해온 DNA 대조군은 84명(한국 83명, 일본 1명)분이다. 이번 DNA 감정을 통해 한 명이라도 일치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한·일 양국은 DNA 감정은 물론 나머지 100여 명의 대조군 확보와 수몰된 해저 탄광의 유골 발굴 작업에도 적극 협력해야 한다.
이노우에 요코(井上洋子) 시민단체 대표는 “한·일 공동 사업으로 양국 정부와 기업, 시민이 함께 자금을 마련해 전문가 팀을 구성해 유골 수습을 진행하면 좋겠다”면서도 “만약 정부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시민의 힘만으로 끝까지 해낸다는 각오부터 다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 유골 발굴 조사는 사고 발생일로부터 꼭 83년째인 다음 달 3일부터 11일까지 예정돼 있다. 한국에서도 유가족 일부가 다음 달 6일부터 사흘간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에도 성과가 나온다면 그것은 정부의 결단보다는 시민들이 버텨온 시간과 쏟아부은 노력 덕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양국 정상의 공식 석상에서 언급된 협력이 말로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