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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의 시선] 부정청약 의혹에 수십억 차익, 이게 정의인가

중앙일보

2026.01.15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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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논설위원
어떤 학교에서 중요한 시험을 쳤다고 가정해보자. 한 학생이 부정행위로 내신등급을 대폭 올렸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구체적인 부정행위의 정황이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 학생은 전교 학생회 임원 후보자다. 그러면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조사 결과 부정행위가 확인되면 시험 성적을 취소하고 엄중히 징계해야 한다. 임원 후보자로서 자격 상실은 당연하다. 이걸 그냥 뭉개고 넘어가는 건 다른 학생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반포 아파트 당첨 이혜훈 후보자
기혼 자녀를 부양가족 포함 의혹
사실이라면 책임지고 사퇴해야

이와 비슷한 논란이 장관 후보자 인사 검증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아파트 ‘부정청약’ 의혹이다. 부양가족 부풀리기로 부당하게 청약가점을 높인 뒤 서울 서초구 대형 아파트에 당첨됐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결과적으로 이 후보자 부부는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사실이라면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중대한 범법 행위다. 그동안 국토교통부는 이런 식의 부양가족 부풀리기를 공급질서 교란 행위로 규정하고 형사 처벌 대상이라고 경고해왔다.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주택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나씩 따져보자. 2024년 7월 서초구 반포동의 래미안원펜타스(신반포15차 재건축) 단지가 입주자 모집공고를 냈다. 이 후보자의 배우자는 이 단지의 137A형(전용면적 137㎡, 공급면적 54평형)에 청약해 당첨자가 됐다. 해당 주택형의 당첨 커트라인은 74점이었다.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과 무주택 기간(32점)에서 모두 만점을 받더라도 부양가족 수가 네 명(25점)이어야 가능한 점수다.

이 후보자 부부에겐 세 명의 아들이 있다. 아파트를 청약할 때 아들 셋을 모두 부양가족에 포함해야만 당첨이 가능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 중 한 명은 입주자 모집공고 7개월 전인 2023년 12월에 결혼식을 했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는 부양가족 수를 계산할 때 “자녀의 경우 미혼으로 한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규칙에 따라 이미 결혼한 자녀는 부양가족에서 제외된다.

논란이 커지자 이 후보자는 “성년인 아들의 혼인신고에 부모가 개입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엉터리 해명이다. 중요한 건 이 후보자 아들이 아파트 청약 시점에 기혼이었느냐, 미혼이었느냐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주택공급 규칙에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자녀는 미혼으로 본다는 내용이 없다. 입주자 모집공고 시점에서 혼인신고 여부와 상관없이 기혼 자녀를 부양가족에 포함했다면 부정청약으로 당첨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아파트를 청약할 때 부양가족이 몇 명인지는 청약자가 직접 입력하는 사항이다. 청약자 본인도 모르게 자동으로 계산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청약 과정에서 부양가족 수를 허위로 입력했다면 부정청약으로 당첨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후보자 부부가 소유한 아파트의 분양가는 36억7840만원이었다. 현재 이 단지에서 같은 면적의 매물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그보다 작은 전용면적 107㎡(공급면적 42평형)의 저층 매물이 74억원에 나와 있다. 현재 시세에서 분양가를 뺀 시세차익은 4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오는 19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이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은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후보자는 부정청약 의혹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내놓든지,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게 마땅하다. 부정청약이 맞는다면 청와대도 부실한 인사 검증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건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이나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운영 중인 아파트 청약 시스템의 공정성과 신뢰에 대한 문제다.

이번 기회에 분양가 상한제라는 제도에 대해서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민간 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한 지 벌써 19년이 됐다. 겉으로는 분양가 상승을 억눌러 집값 과열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로또 분양’이란 말처럼 당첨자에게만 막대한 시세차익을 안겨주는 제도로 변질했다.

의도가 좋았다고 해서 그 결과도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지금처럼 새 아파트 분양가를 억지로 누르면 누를수록 극소수 당첨자가 가져가는 시세차익만 많아질 뿐이다. 반면에 대다수 청약 탈락자에겐 상실감을 안겨주고, 새 아파트의 공급은 더욱 줄어드는 부작용만 커진다. 차라리 분양가를 다소 높이더라도 주택 공급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정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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