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바둑의 최고봉으로 1980년대 세계 바둑계를 평정했던 ‘바둑의 성인’ 녜웨이핑(聶衛平·섭위평) 9단이 14일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74세.
1952년 과학자이던 부친의 근무지였던 랴오닝성 선양에서 태어난 녜 9단의 고향은 허베이성 선저우다. 아홉 살 때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1962년 열 살 때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 대회에 참가해 아동조 3위에 입상했다. 당시 천이(陳毅) 원수에게 트로피를 받으면서 바둑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1985년 제1회 중·일 바둑 수퍼대항전에서 당대 최고수였던 고바야시 고이치, 가토 마사오, 후지사와 히데유키 9단을 차례차례 격파하며 중국에 첫 우승을 안겼다. 이후 1988년 4회 대회까지 일본을 상대로 11연승을 거두며 중국인에게 ‘극일(克日)’의 상징이 됐다. 그해 중국국가체육위원회는 녜 9단에게 ‘바둑의 성인’을 뜻하는 ‘기성’ 칭호를 부여했다.
녜 9단의 바둑 인생은 1989년 한국의 조훈현 9단과 승부로 전환기를 맞았다. 제1회 응씨배 세계대회 결승전 5판 3선승제에서 녜 9단은 조 9단을 상대로 2승1패로 앞서고 있었다. 마지막 두 경기는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경유지 방콕을 도착지로 여긴 녜 9단이 출국장으로 나가면서 컨디션 난조를 보여, 결국 조 9단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당시 대국은 드라마로 만들어진 웹툰 ‘미생’이 매회 두 9단의 제5국 기보를 인용하며 한국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중국 차이신은 부고에서 당시 시합을 소개하며 “한국 바둑이 세계를 지배한 20년의 시작을 알린 승부였다”며 “중국 바둑의 도약과 침체, 양대 전환점이 모두 녜웨이핑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회고했다.
녜웨이핑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베이징 25중학을 함께 다닌 동창생이다. 2015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녜 9단은 “문화대혁명 때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틈틈이 녜 9단을 찾아가 바둑을 배웠다고 한다.
녜 9단은 바둑의 대중화에 힘쓰는 한편 인공지능 알파고 등장 이후 침체에 빠진 바둑계의 활로 찾기에도 힘썼다. 중국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창하오(50), 구리(43) 등 차세대 기사를 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