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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의 시시각각] 돈은 답을 알고 있다

중앙일보

2026.01.1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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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 논설위원
원화가치가 다시 고꾸라지고 있다. 다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옆 나라 일본도 비상이다. 엔화 가치는 연초부터 급락하며 달러당 160엔 선을 위협하고 있다. 급기야 일본 재무상은 지난 14일 ‘전례 없는 과감한 조치’를 언급하며 구두개입에 나섰다. 어찌 익숙하게 보던 풍경이다. 엔화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조기 총선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면서 미끄럼틀을 탔다. ‘아베 노선’을 추종하는 다카이치 총리가 확실한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재정 확대 속도도 빨라질 것이란 예상에서다.

위안 대신 엔을 따라가는 원화
G2에 치이는 ‘동병상련’의 동조화
협력 통해 ‘죄수의 딜레마’ 넘어야

그런데 외환시장에선 최근 원화 약세가 엔화의 움직임을 따라간 영향이란 분석이 많다. 이른바 ‘동조화(coupling)’ 현상이라는 것이다. 환율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달러의 방향이다. 하지만 다른 변수도 있다. 주변의 힘 센 통화의 움직임이다. 특히 경제 의존성이 강하고 처한 환경이 비슷할 때 동조화도 강해진다. 원화와 엔화의 ‘이인삼각’은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관세를 앞세운 미국의 압박에 나란히 천문학적 투자를 약속한 그즈음이다.

흥미로운 것은 원화가 엔화에 동조하면서, 중국 위안화와는 ‘탈동조(decoupling)’하는 흐름을 보인다는 것이다. 위안화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강세를 이어가더니 최근에는 달러당 7위안 선을 깼다. 2년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원화가 한때 위안화의 ‘프락시(proxy·대리)’ 통화로 불리며 찰떡같이 붙어 다녔던 걸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한국의 원, 중국의 위안, 일본의 엔은 모두 둥글다는 뜻의 한자 원(圓)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세 나라 간 얽히고설킨 관계만큼이나 복잡한 행로를 보였다. 새로운 조합이 구성된다는 건 동북아 3국 간 경제 구도가 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원화와 엔화의 커플링은 ‘동병상련(同病相憐)’형이다. 두 나라 모두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등이 터지는 형국이다. 자유무역 질서를 이끌던 미국은 거칠디 거친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현금 인출기’ 역할을 강요한다. 이웃 중국은 어떤가. 한편으론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견제하며 으름장을 놓고, 다른 한편으론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쏟아부어 타국 기업을 고사 상태로 내몰고 있다.

한·일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은 게임이론에서 얘기하는 ‘죄수의 딜레마’를 연상시킨다. 이럴 땐 경쟁보다는 협력의 이익이 훨씬 큰 법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유독 살가웠던 분위기 역시 밑바탕엔 이런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일본 내에서 한·일 ‘미들 파워(middle power)’ 연대론, 독도 문제로 한국을 자극하지 말자는 전향적 목소리가 나온 것도 진전이다.

반대로 원화와 위안화의 탈동조화는 단단했던 경제적 결속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는 신호다. 한때 중국의 경기가 곧 한국의 경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사드 사태와 한한령(限韓令), 공급망 재편으로 상황이 많이 바뀐 게 사실이다. 2018년 26.8%에 달했던 대중 수출 비중은 지난해 18.4%로 내려왔다. 대중 무역수지는 2023년 이후 3년째 내리 적자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지평을 상품 무역에서 서비스·투자로 확대하는 등 전환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야 한다”고 했다. 글쎄, 날것의 국익이 맞부딪치는 세계에서 옳은 편이 어딘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먹고사는 편’, 즉 실리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는 양국의 통화가 답을 주고 있다. 시 주석의 언급에 대해 “공자 말씀으로 들었다”는 이 대통령의 답변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패권을 다투는 대국답게 먼저 얼토당토않은 한한령부터 풀겠다고 나섰다면 아마도 답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조민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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