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았다. 막말로, 내 집 담벼락에 누가 나를 죽이겠다고 써놔도 나는 몰랐을 거다.
경북 포항의 가난한 시골집 맏딸로 태어나 열여덟에 재취(再娶) 자리로 시집갔다. 그렇게 혹독하고 기나긴 시집살이가 시작됐다. ‘학교’라고 생긴 건 문턱 한 번 넘어본 적 없으니 이 고난도 다 못 배운 값이려니, 가슴만 쳤다.
글을 몰랐던 내겐 한(恨)이 많았다. 자식만큼은 누구보다 잘 배운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없는 살림에 꾸역꾸역 8남매를 서울로 올려보내 공부시키느라 뼈 빠지게 일했다.
그게 탈이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덟 자식 중 절반이 내게서 등을 돌렸다. 자식들은 “한창 엄마 사랑이 간절한 사춘기 시기, 자식들 내팽개친 매정한 엄마”라며 손가락질했다.
사랑이라 믿었던 방식이 모두에게 같은 온도로 전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마음을 다한 일이 때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 내가 시인이 되고, 또 이렇게 오래 살 줄은 누가 알았을까. 내 상처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된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나처럼 무식했던 사람도, 깊은 한을 가진 사람도 건강할 수 있는 걸 보면 100세 시대는 저주가 아닌 축복일 것이다.
〈100세의 행복2〉 이번화엔
늦은 나이에 배움과 글을 통해 새 인생을 만난 황보출(93)시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케케묵은 응어리 풀어내자 벌어진 일
가슴의 한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그대로 병이 된다. 황보출은 70세까지 꼭 ‘죽을 날 받아 놓은 사람’처럼 꾸역꾸역 살았다.
고된 시집살이를 겪을 때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모진 세월도 다 자식들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모든 걸 쏟아부어 키운 자식 농사의 결과물은 뼈아팠다. 다 큰 자식들이 그에게 돌려준 건 원망과 외면이었다.
남편을 잃고 아들 집에 얹혀살 땐 그야말로 눈칫밥 신세였다. 아들은 엄마의 외출마저 통제했다.
“말 그대로 감옥이었지. ‘내 탓이오’ 하며 버텼는데….” 아들이 그의 외출을 허락한 단 하나의 장소가 있었다. 바로 한글 학교다.
(계속)
“자식 자랑·남편 욕은 독” 경로당 대신 가는 이곳
“글을 배워 속에 있는 걸 다 꺼내 놓고 나니까 전보다 얼굴이 더 맑아지셨어요.” 막내딸의 말처럼 배움은 그에게 치유가 됐다. 그 흔적은 가장 먼저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누구나 마음 한구석엔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 차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이나 후회 하나쯤 품고 살게 마련이다. 황보출은
일흔에 한글을 배우고 여든에 시인이 됨으로써 그 해묵은 감정들을 스스로 털어냈다.
처음부터 황보출이 시를 일필휘지 써 내려간 건 아니다. 어떤 말로 종이를 채워야 할지도 몰랐다. 초창기 그의 자작시는 하나같이 어두웠다. 못 배운 한부터 자식들에게 남긴 상처까지 자신을 갉아먹는 말들로 빼곡했다.
그 시절 내 삶은 온몸, 농사와 살림에 다 바쳤다.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어, 라고들 하잖아. 요즘은 그렇게 살라고 하면 못 살고 도망갈 것 같아. 젊었을 때는 돈에 눈이 멀고 살림에 집중하니 생각할 틈이 없었지. 못 배운 것도 한탄할 수가 없고 영감 떠나고 서러워도 크게 울 수가 없고. 지금 젊은 시절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득해. 눈물도 샘에 물같이 새더라. 너네는 그러지 말아라. (…) -황보출, 『인생에 늦은 때란 없으니까』(2022)
93세 황보출은 지금도 매일 시와 일기를 쓴다. 저녁 식사 후 책상 앞에 앉으면 1시간은 꼬박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경로당 가보면 죄다 자식 자랑, 남편 욕뿐이지. 그렇다고 집 안에만 들어앉아 있으면 또 뭐 해요.” 그는 낮에는 경로당 대신 매일 이곳으로 출근한다. 인생의 매순간마다 놀라울 정도로 모진 세월을 견뎌낸 그가 100세에 가까운 지금,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튼튼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그가 가장 좋아해서 하루 한 끼는 무조건 먹는다는 건강 반찬과 한 번에 1시간씩 수시로 반복한다는 근력 운동법도 공개한다.
에필로그: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93세의 방
유난히 추웠던 12월의 어느 날, 경북 포항 오천시장에서 황보출 할머니를 처음 만났습니다. 5일장을 기다려온 설렘이 무색하게, 할머니는 추위에 떠는 취재진을 보자마자 손녀딸 대하듯이 “얼른 들어가자”며 좌판을 정리하셨습니다. 흙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다듬어진 채소만큼이나 결 고운 할머니의 배려에서 귀한 어른의 성품이 읽혔습니다. 해맑은 미소만 보면 고생 한 번 안 해본 부잣집 막내딸 같지만, 그 뒤엔 차마 말로 다 못 할 모진 세월이 숨어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취재진은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93세 할머니의 방이라곤 믿기지 않게 활력이 넘쳤습니다. 그냥 방이 아니라 백세 건강의 집약체 같았습니다.
“내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는 뒷방 늙은이가 아니라 황보출 학생으로 살 거야.” 평생 자식 앞에 죄인으로 살았던 ‘못난 엄마’는 어떻게 그 무거운 자책을 훌훌 털어낼 수 있었을까요? 일흔에 시작한 한글 공부가 어떻게 무너진 가족 관계를 되살리고 시들어가던 육신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었을까요?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이제야 원 없이 누리며 산다는 93세 황보출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백세 비결이 많은 이들에게 용기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