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으로서 헌법 수호와 법 질서를 준수할 의무가 있는데도 도리어 절차적 요건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백대현 부장판사가 또박또박 판결문을 읽어감에 따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낯빛이 굳어갔다.
“피고인을 징역 5년에 처한다.”
백 부장판사의 선고가 끝나자 윤 전 대통령은 얼굴이 벌개져있었다. 그리고는 미동도 않은 채 서있었다. 3초간의 짧은 시간이었다. 다시 천천히 몸을 움직여 재판부를 향해 두 차례 고개를 숙였다. 변호인단에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퇴정하면서는 증인석에서 잠시 멈춰섰다. 그리고는 재판부를 향해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법정을 빠져나간 뒤에도 백 부장판사와 특검, 변호인단은 자리를 지켰다.
1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311호 법정에서 윤 전 대통령의 ‘체포 방해’ 혐의 선고가 진행됐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남색 정장에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입정했다. 피부색이 창백했다. 왼쪽 가슴에는 수용번호 ‘3617’ 명찰을 달고 있었다. 재판부가 판결하는 동안 대부분 정면을 응시했지만, 유죄 판단을 할 때마다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공수처 체포방해,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 부서 혐의 등이 유죄 판단을 받자 오른손으로 콧등을 긁적이기도 했다.
백 재판장은 이전 공판에서 가급적 말을 삼갔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윤 전 대통령에게 날 선 비판을 날렸다. 백 부장판사가 “헌법에서 계엄 선포에 관해 국무회의 심의를 특별히 명시하는 것은 대통령의 국가 긴급권 행사 권한의 오남용을 막고 그 독단을 견제하기 위함이므로 국무위원 전원 의견을 더욱 경청하고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고 꼬집자, 윤 전 대통령은 양 입술을 꾹 눌렀다. 대통령의 역할과 책임이 언급되면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이 나올 때는 턱을 앞으로 내밀고 밑 입술도 삐쭉거렸다.
그러나 백 부장판사가 “일신의 안위와 사적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공무원을 사실상 사병화한 행위”를 언급하고, “피고인이 범행 관련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반성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훼손된 법치주의를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질타하면서 윤 전 대통령 얼굴의 홍조의 강도는 더해갔다. 마지막 징역 5년을 선고할 시점에는 완연한 붉은색이었다.
이는 특검팀이 지난해 12월 26일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당시 특검이 양형의견을 펼치던 중간에 윤 전 대통령은 헛웃음 짓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은 당시 59분간 최후 진술에서 “공소장이 코미디같은 얘기”라면서 비상계엄 선포가 ‘계몽령’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했다.
특검팀은 별다른 미동없이 판결을 들었다. 외신 기자들에게 허위 공보한 혐의 등에서 무죄 판단이 이따금 나왔지만 책상에 놓인 서류에 메모하거나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평정을 유지했다. 반면 윤 전 대통령 곁에 앉은 김홍일 변호사는 눈을 감은 채 판결을 듣다가 양형 이유 대목에서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거나 천장을 올려다봤다.
선고를 마친 뒤 방청객들은 질서 있게 법정을 떠났다. 지난 13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서 특검팀이 사형을 구형하자 방청석에서 욕설이 터져나온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재판을 마친 직후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유정화 변호사는 “오늘의 유죄 판결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 행사와 형사 책임의 경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결정”이라며 “상급심에서 반드시 재검토돼 하는 중대한 법리적인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