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여왕’ ‘죽음의 공작부인’ 등의 별명을 가진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는 셰익스피어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탐정소설 작가다. 1920년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으로 등단한 애거사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오리엔트 특급 살인』 『메소포타미아의 살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 66편의 탐정소설과 다수의 시 그리고 많은 희곡을 남겼다. 타계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지금도 열렬한 팬층을 가진 인기 작가다.
그의 사후 50주년에 한국판이 나온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는 영국의 역사 커뮤니케이터이자 저명한 BBC 다큐 진행자인 루시 워즐리가 펴낸 책이다. 워즐리는 애거사가 잉글랜드 애시필드 저택에서 태어날 때부터 윈트브룩에서 숨질 때까지의 전 생애를 추적했다. 애거사의 작품 활동 전반에 걸친 다양한 배경과 캐릭터 설정 과정 등을 탐정처럼 찾아내 그의 팬들은 물론 전 세계 독자들에게 헌정했다. 애거사가 경험한 모든 기억을 속속들이 발굴해 작품 속 어디에, 어떤 대사로 스며들었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정밀 복원했다.
애거사는 첫 남편 아치볼드 크리스티와 이혼한 직후인 1928년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고 영국을 출발해 이스탄불, 다마스커스를 거쳐 바그다드, 그리고 아브라함의 출생지로 알려진 우르까지 여행한다. 고고학원정대와 함께 여행한 애거사는 이후 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중요한 후원자가 되고 그 경험을 소설에도 반영했다.
대표작 중 하나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애거사가 1931년 12월 니네베에서 돌아오는 길에 홍수로 기차가 이틀 동안 멈춰 섰던 일에서 영감을 얻었다. 애거사와 같이 기차에 있던 승객 가운데 “어떤 그리스인의 아내로 얼굴은 추하지만 매우 매력적인 사람”은 소설 속의 드라고미로프 공작부인과 비슷하다. 안토니오 포스카렐리처럼 “덩치가 크고 익살맞은 이탈리아인”과 허바드 부인처럼 끝없이 불평을 늘어놓는 미국인 여성도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1933년 12월 애거사는 나일강을 따라 남부 아스완에 있는 캐터랙트호텔까지 갔고 이를 계기로 『나일강의 죽음』이 탄생했다. 이 책에도 애거사의 두 번째 남편인 맥스 맬로원과 같은 고고학자가 등장한다. 여기서 애거사는 수사와 발굴의 유사성에 대한 이론을 펼쳤다. 소설 속 탐정 푸아로는 자기 일이 (맥스처럼) “흙을 털어내는 것”이며 그렇게 하면 “진실, 벌거벗은 빛나는 진실”만이 남는다고 말한다. 『메소포타미아 살인』도 원정대 울리 부부와 실제 고고학자들을 모델로 삼아 쓴 소설이다.
아서 코넌 도일의 명탐정이 셜록 홈스라면 애거사의 탐정은 에르퀼 푸아로다. 애거사의 첫 작품인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부터 등장하는 푸아로는 달걀 모양의 머리에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을 기른 ‘위험스러울 정도로 과소평가하기 쉬운 탐정’이다. 인맥 좋고 걸출한 영웅인 셜록 홈스와는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유형이다. 푸아로는 벨기에 국적의 난민으로 신체적으로 보잘것없어서 그가 탐정 세계의 중심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다.
애거사는 1차 대전이 터지자 전쟁 자원봉사에 지원해 야전병원에서 일했다. 병동에서 근무지를 옮겨 병원 약국에서 조제실 약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 탐정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조제사 경험은 그의 소설에 절대적인 비중으로 반영됐다. 애거사가 쓴 탐정소설 66편 가운데 41편에 독극물을 이용한 살인, 살인미수, 자살이 등장한다.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의 지은이는 애거사가 소설에 자주 활용한 특유의 트릭들을 잘 찾아내 묘사했다. 물건을 빤히 보이는 곳에 숨긴다든지, ‘숨겨진 커플’을 만든다든지, 신문에서 읽은 실제 범죄 사건의 세부 사항을 활용해 플롯을 꾸민다든지 하는 각종 ‘크리스티 트릭’이 이 책에 망라돼 있다.
실종 사건의 전말을 비롯한 사생활과 작가로서의 활동 등 애거사 크리스티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이 책은 부제처럼 “모든 미스터리는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결론짓는다. 20세기 최고 탐정소설 작가에 대한 미스터리를 꼼꼼히 밝혀낸 이 책은 애거사의 작품을 탐독하면서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레시피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