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ㆍ은ㆍ구리 등 주요 금속 가격이 잇달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전 세계 금속시장을 달구고 있다. 미국의 이란에 대한 군사 개입 가능성이 부각되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이 겹치면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쏠린 결과다.
1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달 14일(현지시각)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금과 은, 구리ㆍ주석 가격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날 국제 금값은 온스당 4641달러까지 올랐다. 금 가격은 2년도 채 되지 않아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올해 초에도 8% 이상 급등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은 가격도 이날 장중 한때 6% 올라 최고치인 92.24달러를 찍었다.
산업용 금속도 랠리에 동참했다. 최근 수개월에 걸쳐 강세를 이어온 구리는 t당 1만3407달러, 주석은 t당 5만4760달러로 각각 최고가를 새로 썼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동시 급등을 이례적으로 평가한다. 캐나다 대형은행인 BMO의 헬렌 아모스 애널리스트는 “상황이 너무 빠르게 변하면서 가격이 모두의 예측을 뛰어넘고 있다”며 “지난 20년 동안 네 가지 금속이 동시에 사상 최고점을 찍은 전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금속 랠리’는 세계적 위험 상황에 대한 투자자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 군사 개입 가능성을 경고하면서다. 여기에 미 연방 검찰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 대한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며, Fed의 독립성에 대한 불안감을 키웠다.
금·은·동의 동반 강세는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미국의 관세정책 등 대외 변수에 따라 전반적으로 우상향 흐름을 그렸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김지형 과장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은은 148%, 금 64.6%, 구리 41.7% 상승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러한 가격 급등의 배경으로는 관세정책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장기화와 미 달러화 자산에 대한 신뢰 약화를 꼽았다. 수급 요인도 있다. 전기차ㆍ신재생에너지ㆍ반도체 등 첨단기술 확산에 따라 은과 구리의 산업 수요가 늘었는데,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공급 제약이 겹치며 수급 불균형이 커졌다. 또 금속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민간 투자가 늘고, 단기 투기 수요가 유입된 점도 가격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문제는 자산 가격 상승이 물가를 밀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크리스티안 바우마이스터 등의 연구에 따르면 구리 가격이 1% 오를 경우 1년 내 소비자 물가가 0.02%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 과장은 “구리와 같은 산업용 금속은 대부분 중간재 성격으로 산업 전반에 걸쳐 사용됨에 따라, 생산자 물가를 상승시키면서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여기에 최근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이 핵심 금속을 전략 자산으로 간주해 수출 통제에 나서거나 비축량을 늘리는 흐름도 부담이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은과 구리ㆍ우라늄 등을 핵심 광물로 지정하며 대내외 투자에 나섰다. 중국은 올 1월부터 은에 대해 희토류에 준하는 수준의 수출 통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