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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노래 밀어냈다, 30초 만에 만들어 낸 그 곡 정체

중앙일보

2026.0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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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의 뮤직 SCENE] AI가 작사·작곡 척척 대중음악 2.0시대

‘출근길에 잃어버린 내 블루투스 이어폰 녀석이 외계인에게 납치된다. 곧 이어폰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영혼을 주입 받아 지하철역 한 구석에서 부활하고, 결국 인간에 대한 분노를 토로한다. 이런 내용의 프로그레시브 록+트랩 장르의 곡 만들어줘.’‘무리한 부탁인가?’ AI(인공지능) 작곡 프로그램 수노(SUNO·2023년 출시) 앱에 들어가 위와 같은 지시문을 입력하다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이내 맘을 돌렸다. ‘AI에겐 좀 무리하게 졸라도 된다. 이미 챗GPT에게도 별의별 걸 다 물어보며 앙탈도 부리고 다그쳐도 보지 않았던가.’

만들어줘’ 다음 ‘엔터’를 친 뒤 30초가 채 지났을까. ‘창의적인 영감이 샘솟고 있어요’ ‘음악적 비전이 실현되고 있어요’ 따위의 문구가 이어지며 괜히 들뜨게 만들더니 드디어 ‘노래가 준비되었습니다. 탭하여 재생하세요!’와 함께 세모꼴 눕힌 듯한 재생 버튼이 생성됐다. 이 대목에서 하나도 안 설렜다면 거짓말이리라. 자, 재생!
임희윤 평론가가 AI 작곡 프로그램 수노 앱으로 ‘Lost My Bluetooth Earbuds’란 곡을 만들었다.
AI가 지어준 곡 제목은 ‘Lost My Bluetooth Earbuds’. 그 그럴듯하다. 작사도 알아서 청산유수. ‘아침 여덟 시의 출근길/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가 도입부다. 이를 부르는 AI 가수님의 음성. 흡사 밴드 데이브레이크의 이원석처럼 청량하다. 이어진 발전부에서는 ‘구르는 이어폰/한쪽이 사라졌다/구르는 이어폰/지하철에 타고 나니/구르는 이어폰/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로 텐션을 높여갔다. ‘구르는 이어폰’을 랩처럼 빠르게 반복하는 말맛이 이미 중독적이다. 끝난 게 아니다. 곡 후반부에선 ‘터져 버릴 것 같다고!’를 무려 84회나 반복, 폭발 직전 이어폰의 분노를 남김없이 쏟아낸다. ‘강남스타일’의 ‘옵, 옵, 옵, 옵’처럼 벌써 귀청에 남는 느낌. 이쯤 되니 은근히 ‘공유하기’ 버튼이 누르고 싶어졌다. ‘인류 여러분, 이 곡 제가 만들었어요!’ 내친 김에 나도 아임올리버(imoliver)처럼 음반사랑 계약하고 인생 이모작, 오케이! ? (‘Lost My Bluetooth Earbuds’의 결말은 이 글의 말미에 밝히겠다.)

개별 악기 연주까지 사용자 입맛대로 편집
영국의 AI 음악 디자이너 아임올리버(올리버 맥캔). 지난해 AI 음악 디자이너로서는 사상 최초로 정식 음반사와 유통계약을 맺었다. [사진 아임올리버]
‘아임올리버’는 영국의 AI 음악 디자이너 올리버 맥캔의 수노 유저 아이디다. 지난해 AI 음악 디자이너로는 사상 최초로 정식 음반사와 유통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됐다. 그는 악기 연주나 노래를 하지 않는다. 나처럼 수노에 명령어를 넣어 음악을 만든다. ‘R&B 아티스트’ ‘록 뮤지션’ 따위의 장르 정체성(또는 한계)도 (필요) 없다. 남성 보컬의 컨템퍼러리 R&B, 여성 가창의 EDM 팝 . 느낌 가는 대로 수노에게 시켜서 써 재끼는데, 수백만 회 재생되며 인기를 얻다 음반사의 러브콜까지 받게 됐다.

수노, 유디오(Udio·2024년 출시) 등 프롬프트 기반 생성형 AI 음악 앱은 출시된 지 불과 1, 2년 만에 각각 누적 다운로드 수 3000만 회와 500만 회를 넘겼다. 2024년과 2025년 수노, 유디오와 저작권 관련 법적 다툼을 이어가던 유니버설과 워너 뮤직 그룹 등 거대 음반사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약속한 듯 틀어쥔 샅바를 슬며시 내렸다. 되레 AI 앱들과 잇따라 인수나 협업 계약을 맺으면서 화해와 상생이란 반전 결론에 다다랐다. 예로부터 거스를 수 없거든 올라타라고 했다.

앞으로는 음악을 직접 만들고 남의 음악을 들어보고 서로 리믹스하며 능동적으로 게임처럼 즐기는 종합 뮤직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서 AI 음악 앱이 대중화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스포티파이, 멜론 등 수동적 감상에 특화한 플랫폼은 구식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음악과는 무관한 일생을 살아온 필자의 지인인 자영업자 A도 이미 ‘판’에 뛰어들었다.

“최근 러시아워에 9호선 급행 ‘지옥철’ 타고 가는 생활인의 비애에 대한 노래를 하나 수노로 만들었어. 근데 너무너무 좋아서 요즘 하루에 수십 번씩 듣는다. 매년 이맘때 내 플레이리스트를 차지하던 아이유 노래를 내 노래가 밀어냈을 정도 .”

지난해 말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디저(Deezer)는 최근 매일 새로 등록되는 음원 중 약 34%가 AI 제작물로 추산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AI의 도움이라도 받은 것까지 합치면 전체의 절반이 넘어 인간 제작물을 추월했다는 업계 추정도 나온다.

그렇다면 작곡은 누구나 하는 새로운 대중 취미가 되는 걸까. 속단은 이르다. 음악과 IT 업계에 걸쳐 일하는 프리랜서 B씨는 “장기적으로 보면 ‘생활작곡가’가 크게 늘 것 같진 않다. 자기 일상을 노래로 만드는 것은 스마트폰 음식 사진 촬영만큼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행위는 아니다. 음악 시장은 계속해서 ‘소수의 생산자-다수의 소비자’ 구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닌 게 아니라 AI 작곡에는 이미 기존 ‘프로’들이 더 적극적이다. 수노는 최근 버전 5를 출시하고 유료 구독 모델을 통해 ‘수노 스튜디오’ 서비스를 시작했다. 생성된 스템 파일(stem files·개별 악기나 소리로 세분된 디지털 음원 단위)의 다운로드와 편집까지 가능케 했다. 단순한 문장형 프롬프트에 따라 완제품만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조립품까지 제공함으로써 사용자가 실제 연주나 가창을 더하고 빼며 인간적이고 디테일한 곡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게 한 셈이다.

얼마 전 만난 중견 싱어송라이터 C씨는 “요즘엔 신곡 만들 때 일단 수노나 유디오부터 켜고 AI의 가사, 선율, 편곡 아이디어를 한 번 살펴본 다음, 내 생각을 추가하거나 편집해 곡의 얼개를 짜는 게 루틴”이라고 털어놨다.

플레이브
‘AI 가수’도 화두다. 지드래곤 소속사 갤럭시코퍼레이션은 지난달 서울에서 버추얼 아티스트 오디션을 진행했다. AI와 확장현실(XR) 기술을 활용한 버추얼 가수의 ‘본체’가 될 인간을 뽑는 자리였다. 참가자는 외모나 피지컬을 평가받는 대신 장막 뒤에서 표정, 동작, 노래에 최선을 다했다. 전문 장비를 착용하고 퍼포먼스를 하면 스크린 속 아바타에 일거수일투족이 반영되는 식이다. 최근 플레이브, 이세계아이돌 등 버추얼 아이돌 그룹이 고척스카이돔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 정도로 팬덤을 확장시킨 게 촉매제였다. 아바타형 버추얼 가수 시장의 확대를 환영하는 목소리도 음악계 일각에서 들린다. 외모를 빼고 가창력 등 좀 더 음악의 본질에 충실한 이들의 막혔던 데뷔 길을 연다는 면에 그들은 주목한다.

이세계아이돌
AI 노래 디자인하는 ‘휴머나이저’ 직종 주목
아바타는 서막일 뿐이다. 아예 가창력, 말솜씨, 인성( ?)이 스스로 완벽한, 100% AI 가수의 출현도 시간문제다. SF영화 ‘제5원소’ 속 사이보그 성악가, ‘가타카’에 나오는 손가락 열두 개 로봇 피아니스트 같은 존재의 탄생이다. 뒤에서 조종하는 이 없이 타고난(또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개성, 지성, 작사·작곡·가창 능력으로 스스로 스타가 되고 죽지도 않아 팬들보다 오래 사는 AI 가수 . 지난해 중국 국영TV 춘제 갈라쇼에서 인간 가수와 함께 공중제비 등 칼군무를 선보인 로봇은 임바디드(embodied·몸을 가진) AI 댄스 가수의 청사진을 가시화했다.

‘제5원소’ 디바
인류가 수천 년간 구축한 음악의 정의는 AI와 함께 이렇게 특이점에 닿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 휴먼과 버추얼의 장벽이 붕괴 중이다. 제작과 향유의 개념이 전복된 ‘대중음악 2.0’ 시대는 금세 도래할 운명이다. 그럼 저 AI와 로봇 군단이 ‘터미네이터’가 돼 인간 음악가들을 절멸시키는 현실 시퀀스를 팝콘 들고 관람하는 일만 남은 걸까.

‘AI악(樂)’의 시대에 음악계 유망 직업은 있다. AI 생성 콘텐츠에 인간의 향기와 맥락과 서사를 더하는 직무. 이를 감히 ‘휴머나이저(humanizer·인간화하는 사람)’라 부르고 싶다. 이야기와 사람 냄새야말로 음악의 품격을 가리는 기준이 될 것이다.

자, 필자가 수노님께 시켜 만들었던 신박한 곡, ‘Lost My Bluetooth Earbuds’는 어떻게 됐을까. 첫 버전은 솔직히 35% 부족했다. 가사는 재미났고 음악도 들어줄 만은 했지만 처음 입력한 프롬프트 중 ‘프로그레시브 록+트랩 장르’에 영 맞지 않았다. 진지하고 실험적인 곡을 원했는데 애매하게 신나는 팝 록 스타일이 나와 버렸다. 역시 프롬프트의 요체는 디테일인가. 지시문을 다음과 같이 수정했다.

‘같은 내용이되 프로그레시브 록(1970년대 이탈리아 밴드 ‘라떼 에 미엘레’ 스타일)+트랩 장르의 곡으로 만들어줘. 길고 복잡한 기타 솔로, 멜로트론과 moog 신시사이저 소리도 들어갔으면.’

이번엔 ‘외계로 납치된 나의 이어폰’이란 곡이 25초 만에 뚝딱 완성! 재생 버튼을 누른 뒤 두 귀를 의심했다.

‘인류에 대한 배신감으로 내가 돌아왔어/이 인간들아/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야 이 자식들아

빠르게 내뱉는 독한 가사들. 그러나 예수의 수난극과 부활을 록과 클래식의 접목으로 풀어낸 라떼 에 미엘레 같은 스타일은 도대체 어디에 . 지금 내 귀를 울리는 것은 이박사 뽕짝 메들리 분위기의 정신 없는 세미 트로트 곡이다. AI 님께서 설마 ‘라떼’란 키워드에 꽂힌 걸까. 가사를 눈으로 따라가다 이내 난 분노에 찬 싱얼롱을 시작했다.

‘배신감으로 내가 돌아왔어/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야 이 자식들아 ’.

어쩌면 내가 덜 떨어진 휴머나이저인 탓인지도. 그래. 역시, 음악은 제대로 된 인간이 말아 줘야 제맛이다. 적어도 2026년 1월 현재까지는. 아마도.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 뮤직 컨설턴트. 하이브,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에서 강연했고 BBC, 아사히에 한국 문화 에 관한 도움말을 줬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임희윤 평론가가 AI 작곡 프로그램 수노 앱으로 ‘Lost My Bluetooth Earbuds’란 곡을 만들었다. QR코드를 찍으면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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