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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못해도 기죽지 마" 백수저 셰프가 남긴 위로

중앙일보

2026.01.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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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렌치 셰프 1세대, 박효남 세종사이버대 교수

정통 프랑스 요리를 하며 47년을 보낸 박효남 셰프와 그가 만든 음식(아래 사진). 프랑스 요리를 할 때는 와인·브랜디 등의 술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늘 뜨거운 불꽃과 마주해야 한다. 최기웅 기자
“프랑스 음식을 한 번도 안 먹어본 소년이 프랑스 음식을 하고, 그 음식을 통해서 많은 미식가들을 감동시키고, 기어이는 프랑스에서 훈장(한국 요리사 최초로 프랑스 정부의 농업공로훈장 수상)을 받는 스토리를 보면서 따라가게 됐던 것 같다.” 며칠 전 종영한 넷플릭스 화제작 ‘흑백요리사 2’ 초반, 1:1 경쟁을 앞둔 인터뷰에서 흑수저 ‘프렌치파파’는 자신과 맞붙을 백수저 박효남(64) 셰프를 이렇게 소개했다.

‘한국의 프렌치 셰프 1세대’인 박 셰프는 글로벌 호텔 체인 힐튼 호텔 최초의 현지인 총주방장으로 임명된 후 최연소 임원(상무)까지 역임한 셰프계의 ‘전설 중 전설’이다. 더욱이 그는 어린 시절 사고로 오른손 검지 손가락 두 마디를 잃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아홉 손가락으로 요리하는 셰프’로 유명해지면서 도전과 희망의 상징이 됐다. 그의 소설 같은 47년 요리 인생이 궁금해 지난 14일 세종사이버대를 찾았다. 2015년 힐튼 호텔을 퇴사한 후 줄곧 그는 이곳의 조리산업경영학과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 쏟고 있다.


Q : ‘흑백요리사’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A : “사실 ‘흑백요리사’ 시즌 1을 전혀 보지 않았어요. ‘요리계급전쟁’이라는 표현이 싫었고 마음 아팠거든요. PD와 작가가 찾아왔을 때도 ‘나는 철저히 흑수저인데 어떻게 백수저로 나가나’ 거절했었죠. 그럼에도 참가한 건 요리를 사랑하고 맛있는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주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어요. 아마도 후덕죽 셰프나 선재스님이나 다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요.”


Q : 1:1 대결에선 너무 여유롭다가 팀 대항 때 ‘정말 오랜만에 긴장된다’ 혼잣말을 하더군요.
A : “팀장이었으니까, 나만 떨어지는 게 아니고 다 떨어진다니까 책임감 때문에 조금 긴장했어요.(웃음) 그때 말고는 주방에서 늘 하던 대로 머릿속으로 타임라인 그려가며 했으니까 여유로웠죠. 다른 참가자들은 마지막에 그릇 닦느라 분주했지만 나는 요리 만드는 중간 중간 주방에서 하던 대로 바로 바로 설거지를 했으니까 시간에 쫓길 일이 없었죠.”


Q : ‘하던 대로’ 총주방장이면서 팬을 직접 닦았나요.
A : “옛날에는 후배가 선배들 옆에서 보조 하면서 설거지를 다 해줬는데, 그러면 그만큼 후배들은 일 배울 시간이 줄어들잖아요. 내가 주방장이 됐을 때부터는 자기가 쓴 도구는 자기가 닦는 걸로 했어요. 선후배간 예의는 지켜야 하지만 일과 배움은 수평적이어야 하니까요.”


Q : ‘프랑스 음식을 한 번도 안 먹어본 소년’이 요리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A : “기술을 배워 빨리 돈을 벌고 싶었어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직업군인(원사)이셨던 아버지는 제대 후 서울로 올라와 연탄가게를 하셨어요. 방학 때면 부모님을 도왔죠. 연탄가게는 여름에 더 바빠요. 여유 있는 분들 집엔 연탄 광이 따로 있어서 연탄 값이 조금 싼 한여름에 ‘차떼기’로 2000~3000장씩 들여놓거든요. 그걸 나르는 부모님 이마에선 검정 땀이 비 오듯 흘렀고, 그게 늘 마음 아팠어요. 그래서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직업 전선에 나섰죠.”

경기도 부천에 있는 번개표 형광등 공장이 첫 직장이었지만, 회사에서 먹고 자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2주 만에 그만뒀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소년에게 집을 떠나 생활하는 건 너무 무섭고 외로운 일이었다. ‘요리를 배우면 호텔에 취업할 수 있다’는 사촌 형의 말에 종로에 있는 수도요리학원에 다녔고, 1년 후 조리사 자격증(당시는 면허증)을 땄다. ‘양식 경험도 없으면서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어떻게 땄나’ 물었더니 그가 빙그레 웃으면서 답했다. “조리사 면허증은 중식으로 땄어요.(웃음) 한식은 양념이 많아 어렵고, 양식은 낯설고. 그런데 중식은 이것저것 재료를 다 쏟아 붓고 볶기만 하면 될 것 같아 제일 쉬워 보였거든요.”(웃음)

한국의 1세대 프렌치 셰프 박효남의 요리. [사진 박효남]
18살인 1978년 5월 10일 요리학원 원장님의 추천으로 하얏트 호텔에 첫 출근을 했다. 당시 이력서에는 달랑 세 줄이 적혀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중학교 졸업, 조리사 면허증 소지. 일하고 싶은 식당을 고를 수는 없었다. 면허증은 중식으로 땄지만 당시 중식당은 화교 출신 셰프들이 도맡고 있었다. 첫 근무지는 프로덕션팀이었다. 호텔 내 한식·중식·양식당에 각종 소스와 다듬은 채소 등을 공급하는 팀이었다. 박 셰프는 그곳에서 정말 엄청나게 많은 감자를 깎았다고 했다.


Q : 그동안 방송에서 보여준 ‘전설의 돌려깎기’를 그곳에서 익혔군요.
A : “하루에도 수백 개씩 감자를 깎았어요. 어떡하면 빨리 깎을까, 집에 가서 밤마다 생계란을 손에 쥐고 칼 움직이는 연습을 했죠.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때 시골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 감자밭에서 서리를 참 많이 해먹었는데, 그때 훔쳐 먹은 감자들의 저주를 지금 받고 있구나.(웃음)”


Q : 감자가 끔찍하게 싫었겠군요.
A : “그 ‘저주의 감자’가 결국 ‘행운의 감자’가 되더라고요.(웃음) 프로덕션팀 이후 프랑스 식당 ‘휴고’에 배정 받아서 갔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음식도 내가 먹던 한식과 다르고, 접시를 예쁘게 꾸미는 것도 재밌고. 5년 후 힐튼 호텔에 새로 생긴 ‘시즌스’로 이직 했고, 운 좋게 프랑스에 있는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에서 3주간 연수할 기회도 가졌죠. 그런데 정작 가보니 스태프들이 바빠서 나랑은 눈도 안 마주치는 거예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씽크대에 쌓인 감자를 깎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스태프들이 모이더라고요. 신기하니까(유럽에선 감자를 필러로 깎는다). 돌려 깎기 기술을 가르쳐 달라길래, 그럼 내게 요리 기술을 가르쳐 달라 딜을 했고 무사히 연수를 마칠 수 있었죠. 지금도 조리학교 학생들에게 ‘옆 친구보다 요리 못한다고 기죽지 마라. 분명 네가 잘 하는 게 있다. 그걸 찾아서 더 노력하는 게 진짜 성공이다’ 얘기해요.”


Q :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희망을 찾네요. ‘아홉 손가락으로 요리하면서 긍정의 힘을 얻었다’고도 했죠.
A : “서울로 오기 전까지 강원도에 살았는데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친구 몫인 소 여물 주기를 함께했어요. 들판에 소 풀어두고, 우린 감자 서리하고. 3학년 때 처음 작두를 잡아봤는데 그날 검지 손가락 두 마디를 잃었죠. 하지만 손가락을 하나만 잃은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만약 네 손가락을 잃었다면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요리를 할 수 있었을까요 ? ‘긍정의 힘’이란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거죠.”

힐튼 호텔 최초의 현지인 총주방장으로 부임 후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기사 〈2001년 6월 18일자〉. [중앙포토]
1983년부터 2015년까지 힐튼 호텔 프렌치 레스토랑 ‘시즌스’에서 32년간 근무했다. 2014년에 대한민국 10대 요리명장이 됐고, 이듬해 박 셰프는 세종사이버대로 자리를 옮겼다. ‘가르치는 일도 의미있다’ 생각하고 한 큰 결심이었지만 꽤나 오랜 시간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32년간 출퇴근 하던 곳을 떠나니 도무지 안정이 안 되더라고요. 결국 퇴사 이후 힐튼 호텔을 한 번을 안 갔어요. 못 가겠더라고요.”


Q : 우울증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A : “사이버대 만학도들 덕분이죠. 나도 직장 다니면서 방송통신고, 방송통신대를 다녔거든요. 라디오 방송을 어머니가 녹음해두면 밤에 그걸 들으면서 공부했죠. 늦은 나이에도 요리사를 꿈꾸는 그분들이 옛날의 저를 떠올리게 하면서 새로운 힘을 줬어요.”


Q : 셰프 박효남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요리는 뭔가요.
A : “그런 건 없어요. 그저 늘 내가 먹을 거라는 생각으로 음식을 요리해요. 모든 셰프들이 요리하는 원동력은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일 거예요. 어머니가 식구들 밥상을 차릴 때처럼 손님의 식탁을 차려내는 거죠. 요리를 잘 하고 못 하고보다 셰프들이 진짜 노력해야 할 것은 몸과 혀를 끊임 없이 단련하는 거죠.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근육 단련을 하듯. 20대부터 술·담배를 일절 안 하는 이유에요.”


Q : 32년간 ‘시즌스’를 찾은 손님들이 참 많았을 텐데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A : “손님의 입맛을 기록했다가 다시 찾아주셨을 때 그 입맛대로 요리를 하면 다들 고마워하셨죠. 특히 구본무 회장님은 언제나 음식을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드시고는 저를 불러 ‘고맙다’ 인사하셨죠. 회장님이 그러기 쉽지 않잖아요. 한국경제인협회 류진 회장님은 옛날부터 부모님과 같이 오셨는데 그 어머님이 참 멋쟁이셨어요. 항상 ‘우리 아들이 사업을 잘 할 수 있는 건 박 상무님이 맛있는 것을 해줘서 힘이 나는 덕분’이라고 고마워 하셨죠. ‘맛있게 잘 먹었다, 고맙다’ 셰프로선 참 힘 나는 말이에요.”


Q : 프렌치 요리와 한식 재료는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다며, 이번에도 맛김과 참기름을 프랑스식 소스와 결합했죠.
A : “프랑스 소스에 간장을 섞고, 고기를 더 부드럽게 굽기 위해 소금구이를 할 때 깻잎을 이용하고. 한식과 양식을 조합해보는 시도를 많이 했었는데, 요즘 젊은 셰프들에게 또 새로운 걸 배우고 있어요. 정말 잘 하더라고요. 아이디어도 너무 좋고. 이제 요리는 전 세계가 니 것 내 것이 없어요. 남의 것도 잘 갖다가 내 것으로 만들면 되죠. 한국의 식재료들이 얼마나 좋은 게 많아요. 농부의 마음은 다 똑같아요. 잘 키운 채소를 자식 시집·장가 보내듯 좋은 곳으로 보내는 것. 우리 땅이 키운 식재료들을 전 세계로 수출할 수 있기를 바래요.”





서정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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