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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 통합' 숱하게 논의했다고?…갸웃하게 한 국토부 장관 발언 [현장에서]

중앙일보

2026.01.17 13:00 2026.01.1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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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산하기관 업무보고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국토교통부
지난 1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는 ‘민생·안전’이란 주제로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 코레일, SR 등의 업무보고가 있었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이 주재한 이 자리에선 기관별 현안에 대한 질의와 응답이 이어졌다. 그런데 철도 분야 관심사인 고속철 통합, 즉 KTX와 SRT 통합에 대해선 거의 언급이 없었다. 장관은 물론 차관, 담당 국장도 해당 사안은 거론하지 않았다.

무슨 사연인지 궁금하던 차에 김 장관이 다음 차례로 넘어가기 전에 언급했다. 그는 “코레일과 SR 통합 문제도 사실상 통합으로 결정이 됐다”며 “다만 일부 비판론처럼 준비 없이, 또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김 장관은 “지금까지 숱하게 몇 년 동안 논의됐던 거에 대해서 좀 정확한 방침을 정한 것이며 이걸 진행한다면 속도감 있게 진행하겠다고 하는 판단을 하고 있다”라고도 말했다. 그동안 많이 논의했기 때문에 더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인 듯했다.

하지만 고개가 갸웃했다. 고속철 통합을 두고 몇 년 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게 맞나 싶었다. 철도 전문가들과 철도업계에 확인해보니 그나마 고속철 통합을 제대로 다룬 건 문재인 대통령 때인 2021년에 양 기관 노사 대표와 전문가들로 거버넌스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한 게 거의 전부였다.

당시 20여 차례의 회의를 거쳐 “코로나 19로 인해 경쟁체제가 정상적으로 운영된 기간(2017~2019년)이 3년에 불과해 효과 분석에 한계가 있다”며 통합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이후 고속철 통합 논의는 사실상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오히려 지난 정부에선 통합이 아니라 정부가 코레일에 위탁한 관제와 유지보수 업무를 떼어내려는 논의가 더 활발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사이 철도노조 등의 고속철 통합 요구만 지속적으로 나왔을 뿐이다. 그러다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선 공약임을 내세워 고속철 통합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양 기관 대표와 소수 전문가가 참석한 간담회만 세 차례 열렸을 뿐 통합의 장단점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기구는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또 코레일과 철도노조가 주장하는 대로 통합시 1만 6000석의 좌석이 더 공급될 수 있는지 등을 검증하는 절차나 용역 발주도 없었다. 물론 철도 고객인 국민의 의견을 들어보는 여론조사와 공청회 역시 시행되지 않았다.

국토부는 지난해 말 고속철 통합 로드맵을 발표한 뒤에야 관련 TF팀을 만들었고, 앞으로 통합 관련 연구용역과 검증절차를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김 장관은 고속철 통합에 대해 몇 년 동안 숱한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업무보고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정책방송원이 운영하는 케이블TV 채널인 'KTV 국민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 중이었다.

해당 내용을 세밀히 모르는 시청자들로서는 장관의 발언을 들으면 고속철 통합을 두고 꽤나 오랜 시간 많은 논의가 있었던 거로 오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북 포항역 플랫폼에 수서행 SRT고속열차와 KTX고속열차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앞서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12일에 열린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고속철 통합에 대해 “민간에 매각 못 하게 빨리 합쳐놓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업무보고도 지상파 방송 등에서 생중계됐다.

하지만 2013년 SR 설립 초기 운영권을 민간에 넘기려던 논의가 강한 반대에 부딪힌 이후 SR이 걸어온 길은 민간 매각과는 반대방향이었다. SR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뒤인 2018년 2월에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아예 공기업이 됐다.

이듬해 1월에는 코레일과 동일한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됐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2016년 말 SRT 개통 이후 민간매각 논의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금시초문이란 반응이었다.

고속철 통합 결정은 정부 차원의 중대한 의사결정이다. 동시에 철도 고객인 국민의 이동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철도산업 전반에도 파급력이 지대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고속철 통합의 논리와 과정이 명확하고, 정교하고, 촘촘해야만 하는 이유다. 사실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근거와 분석 결과를 가지고 이해 당사자는 물론 국민을 설득하면서 차근차근 추진해야만 한다.

또 앞으로 철도산업이 가야 할 큰 그림도 그려야 하는 건 물론이다. 그리고 운영통합 과정에서, 용역 결과에서 당초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이 나온다면 정책 방향을 과감히 바꿀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둬야만 한다. 속도만이 능사가 아니다.



강갑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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