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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보다 파워…대격변의 트럼프 1년, 거세진 다극화[View]

중앙일보

2026.01.1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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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연방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규칙에 기반한 미국 중심 단극 체제에서 힘을 기반으로 한 다극 체제로’
테다 스콕폴 하버드대 석좌교수 등 국제정치 전문가 5명이 진단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년에 대한 평가다.

오는 20일(현지시간)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재입성한 지 1년을 맞는다. 지난 1년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귀환을 넘어, 전후(戰後) 80년간 미국이 구축해 온 자유주의 무역 질서, 동맹 중심 외교안보 체제라는 국제 질서의 패러다임이 무너지는 격변의 시간이었다. 중앙일보는 ‘트럼프 1년’을 짚어보고 향후 국제 질서의 변화를 조망하기 위해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5명 전문가와 전화 또는 서면 인터뷰를 했다.



“세계 리더 사라진 ‘G-제로’ 시대”

지난 1년에 대해 스콕폴 교수는 “반(反)군주제를 핵심으로 한 미국 헌법 정신이 무너지고 극단적 의제를 추진하는 트럼프 권위주의 체제가 구축됐다”고 총평했다. 하버드대 문리대학원장, 미국정치연구센터 대표를 지낸 스콕폴 교수는 정치학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요한 스키테 상’을 2007년 수상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글로벌 컨설팅 기업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바꿔놓은 세계를 국제 질서의 리더가 사라진 ‘G-제로(Group of Zero)’라는 콘셉트로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미국의 어느 대통령보다 국내외 정책에서 가장 큰 변화와 혼란을 초래했다. 미국의 리더십을 해체하고 일방주의와 ‘정글의 법칙’을 요구하면서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이 일상화했다”라면서다. 거래적 관점의 1대1 양자 관계가 보편화됐다는 의미다.

미국 정치사를 연구해 온 로버트 슈멀 노터데임대 교수는 “지난 1년간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직에 관한 전통적 규범과 기준을 무너뜨렸다. 정부의 방향ㆍ정책에 대한 대중의 누적된 불만은 비상등을 켰다”고 진단했다.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국제정책ㆍ동아시아학 교수 역시 “미 역사상 가장 중대하고 파괴적인 대통령일 것”이라며 “권력 기관 간 견제와 삼권 분립이라는 헌법 체제를 희생시키면서 행정부에 막대한 권력을 집중시킨 결과는 ‘트럼프 권위주의 국가’”라고 비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관세의 무기화’…자유무역 질서 무력화

경제ㆍ통상 분야를 뒤흔든 건 ‘무기화된 관세’다. 트럼프 행정부는 고율의 상호 관세, 반도체ㆍ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를 앞세워 동맹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양자 협상을 강요하며 자유무역 질서를 무력화했다. 스콕폴 교수는 이를 “혼란스러운 경제 정책”으로 규정하며 경제적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반면에 스테판 슈미트 아이오와주립대 석좌교수는 “국제 통상 질서는 트럼프 이전부터 무너져 왔다”며 “트럼프의 관세는 러시아와 중국, 중동의 도전에 맞서는 과정에서 빼든 공격적 카드”라고 봤다. 기업과 소비자들은 새로운 비용 구조에 일정 부분 적응하고 있으며 관세 충격은 미 교역 상대국들의 보완 조치로 상쇄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적응’이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슈멀 교수는 “미ㆍ중ㆍ러를 주도적 세력권으로 보며 전통적 국제 무역 질서와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가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힘을 통한 평화’…동맹 체제 무력화

지난해 8월 4일(현지시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ㆍ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행사장에 나타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은 ‘힘을 통한 평화’로 상징된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 작전, 그린란드 확보 의지 노골화, 그리고 지난해 말 공개된 국가안보전략(NSS)은 공통적으로 서반구(아메리카 대륙) 내 미국 영향력 회복 의지를 보여준다. 서반구에 대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1823년 공표한 먼로 독트린의 트럼프 버전인 ‘돈로 선언’이다. ‘세계 경찰’ 역할에서는 물러나면서도 서반구 내 입지는 확실하게 강화하는 노선이다.

슈멀 교수는 “미국은 NSS를 통해 앞마당(서반구)에서 패권을 행사할 의도가 있으며 이를 위해선 상대와 협의 없이 행동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스콕폴 교수는 무력화된 동맹 체제를 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는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는 처지”라고 짚었다.

하지만 반발도 이어진다. 슈미트 교수는 “미국의 그린란드 압박에 오히려 나토 국가들이 세 규합 움직임을 보이는 등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만은 아니다”고 했다. 브레머 회장도 “베네수엘라 친중 정권에 대한 미군의 공격에도 중국은 여전히 남미 대부분 국가의 주요 무역ㆍ투자 파트너로 남아 있다”며 “17일 유럽연합(EU)이 중남미 국가 연합 메르코수르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것도 미국의 일방적 관세와 트럼프 보호무역주의가 낳은 집단적 반작용”이라고 설명했다.



李정부 과제, ‘전략적 가치’ 각인시켜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9일 경북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열린 한ㆍ미 정상회담 확대오찬회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한국에도 지난 1년은 거센 압박의 연속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한 협상 끝에 15%의 상호관세와 2000억 달러 대미 투자 및 국방비 증액 등을 약속했다. 트럼프 시대 한ㆍ미 동맹을 놓고는 구조적 약화 가능성은 작지만 국익 기반의 거래적 관점에 한국이 더욱 면밀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스콕폴 교수는 “트럼프는 누구에게도 신뢰할 수 있을 만한 리더는 아니다”고 했다. 동맹국인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뜻이다. 슈미트 교수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자 교역 파트너라는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지만 힘이 규칙을 대체한 트럼프 시대 불확실성에는 대비 체계를 갖춰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결국 한국으로선 굳건한 한ㆍ미 동맹의 기틀 위에서 ‘거래’를 넘어 ‘전략적 가치’를 트럼프 행정부에 끊임없이 각인시키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됐다.



김형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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