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지난해 11월부터 최근 마지막 거래일인 지난 16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2조701억원어치 주식을 팔았다(순매도). 이달 들어서도 8935억원을 처분했다. 지난해 1년간 3조6893억원을 순매수하며 증시를 떠받쳤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팔자’ 전환이 두드러진다. 연기금에는 국민연금·사학연금·공무원연금·군인연금 등 공적 연금과 각종 공제회, 우정사업본부 등이 포함된다.
연기금의 코스피 매도는 차익 실현, 코스닥 시장으로의 이동 등 여러 요인이 있다. 다만 시장은 주가 상승으로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이 높아진 걸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연기금 등 기관이 전방위적으로 코스피를 끌어올리다가 한계점에 다다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보유 자산을 기준으로 연기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경우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내 주식 비중이 17.9%에 이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서 정한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은 14.9%다. 전략적 자산배분(SAA) 규정에 따라 ‘±3%포인트’ 한도 내에서 비중 조정이 가능한데,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은 이를 고려한 최대 수준까지 차올랐다. 국내 주식 외에 국민연금 자산은 해외 주식 37.2%, 국내 채권 22.2%, 해외 채권 6.9%, 대체투자 15.5%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자산은 1427조7000억원으로 세계 3위 연기금이다. 국내 증시는 물론이고 세계 금융 시장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장에선 연기금의 매도세가 더 확산할 경우 코스피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명호 홍익대 경제학 교수는 “국민연금이 많은 금액의 한국 주식을 팔면 주식 시장에 하방 압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확대를 고민 중이다. 앞서 지난해 말 이재명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국내 주가가 오르면서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 한도를 초과했는데, 이것을 계속 팔아야 하느냐”며 “국내 증시가 잘되는데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더 보유하면 그만큼 득이 되고 국민의 노후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다”고 했다. 사실상 국내 주식투자 비중 확대를 지시한 것이다.
기금위 결정에 따라 올해부터는 국내 주식의 목표 비중이 14.4%로 낮아진다. 전략적 자산배분(SAA)을 기준으로, 추가로 조정이 가능한 전술적 자산배분(TAA·±2%포인트) 감안하면 최대 19.4%까지 국내 주식 투자가 가능하다. 국민연금은 내부적으로 이를 저울질 중이다.
다만 정태규 국민연금공단 연금이사는 지난 15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국내 주식 비중 확대를) 공단 자체적으로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논의하고 결정해야 될 사항”이라며 “내부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서 검토하고, 고민하고 있지만 이 자리에서 공단 차원에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연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우려하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박명호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국내 주식 가격이 올라갈 수 있겠지만 연기금의 포트폴리오는 오랜 시간 논의를 거쳐 굳어진 만큼 국내 주식 비중을 늘리는 것에 있어서는 장기적으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김학주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은 주식시장을 부양하는 게 아니라 국민 노후 보장을 위한 자금”이라며 “투자의 목적은 오로지 수익 극대화에만 있어야지 정책 자금 성격으로 활용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