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동 등 주요 금속 가격이 잇달아 역대 최고 수준까지 올라섰다.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 그린란드까지 지정학적 불안이 끊이지 않는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독립성 논란까지 겹치면서 안전자산으로 돈이 쏠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6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2.18% 오른 온스당 4588.4달러에 거래됐다. 지난 14일 사상 최고치(4650.4달러)를 찍은 데 이어 4600달러 안팎에서 값이 움직이고 있다. 금 가격은 2년 전과 비교해 2배 넘게 올랐다.
은 선물 가격도 15일 장중 한때 최고치인 93.75달러를 찍었다. 산업용 금속도 랠리에 동참했다. 14일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구리(동)는 t당 1만3407달러, 주석은 t당 5만4760달러로 각각 최고가를 새로 썼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이례적으로 평가한다. 캐나다 대형은행인 BMO의 헬렌 아모스 애널리스트는 “상황이 너무 빠르게 변하면서 가격이 모두의 예측을 뛰어넘고 있다”며 “지난 20년 동안 네 가지 금속(금·은·구리·주석)이 동시에 사상 최고점을 찍은 전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금속 랠리’는 투자자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 군사 개입 가능성을 경고하면서다. 여기에 미 연방 검찰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 대한 수사에 나선 것이 알려지며, Fed의 독립성에 대한 불안감을 키웠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금속 가격 급등의 배경으로는 관세정책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장기화와 미 달러화 자산에 대한 신뢰 약화를 꼽았다. 수급 요인도 있다. 전기차·신재생에너지·반도체 등 첨단기술 확산에 따라 은과 구리의 산업 수요가 늘었는데, 지정학적 리스크로 공급망에 경고등이 켜졌다.
또 금속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민간 투자가 늘고, 단기 투기 수요가 유입된 점도 가격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최근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이 핵심 금속을 전략 자산으로 간주해 수출 통제에 나서거나, 비축량을 늘리는 것도 가격을 끌어올리는 원인이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은과 구리·우라늄 등을 핵심 광물로 지정하며 대내외 투자에 나섰다. 중국은 올 1월부터 은에 대해 희토류에 준하는 수준의 수출 통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자산 가격 상승이 물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크리스티안 바우마이스터 등의 연구에 따르면 구리 가격이 1% 오를 경우 1년 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02%포인트 뛰는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