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재입성한 지 1년을 맞는다. 지난 1년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귀환을 넘어 전후(戰後) 80년간 미국이 구축해 온 자유주의 무역, 동맹 중심 외교안보라는 국제질서의 패러다임이 뿌리채 무너지는 시간이었다. 중앙일보는 ‘트럼프 1년’을 짚어보고 향후 국제질서의 변화를 조망하기 위해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국제정치 전문가 5명과 전화 또는 서면 인터뷰를 했다.
지난 1년에 대해 테다 스콕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반(反)군주제를 핵심으로 한 미국 헌법 정신이 무너지고 극단적 의제를 추진하는 트럼프 권위주의 체제가 구축됐다”고 총평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은 국제질서의 리더가 사라진 ‘G-제로(Group of Zero)’라고 설명했다. “미국식 일방주의와 ‘정글의 법칙’이 커지면서 국제질서가 더욱 불확실해졌다”면서다. 거래적 관점의 1대1 양자관계가 보편화됐다는 의미다.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국제정책·동아시아학 교수는 “행정부에 막대한 권력을 집중시킨 결과는 ‘트럼프 권위주의 국가’”라고 비판했다.
특히 경제·통상 분야를 뒤흔든 건 ‘무기화된 관세’다. 트럼프 행정부는 고율의 상호 관세, 반도체·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를 앞세워 동맹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양자협상을 강요했다. 스콕폴 교수는 이를 “혼란스러운 경제 정책”으로 규정하며 경제적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반면에 스테판 슈미트 아이오와주립대 석좌교수는 “국제 통상 질서는 트럼프 이전부터 무너져 왔다”며 “트럼프의 관세는 러시아와 중국, 중동의 도전에 맞서는 과정에서 빼든 공격적 카드”라고 봤다. 기업과 소비자들은 새로운 비용 구조에 일정 부분 적응하고 있으며 관세 충격은 미 교역 상대국들의 보완 조치로 상쇄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은 ‘힘을 통한 평화’로 상징된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 작전, 그린란드 확보 의지 노골화, 그리고 지난해 말 공개된 국가안보전략(NSS)은 공통적으로 서반구(아메리카 대륙) 회복을 강조한다. ‘세계 경찰’ 역할에서는 물러나면서도 서반구 내 입지는 확실하게 강화하는 노선이다. 미국 정치사를 연구해 온 로버트 슈멀 노터데임대 교수는 “미국은 NSS를 통해 앞마당(서반구)에서 패권을 행사할 의도가 있으며 이를 위해선 상대와 협의 없이 행동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짚었다.
하지만 반발도 이어진다. 브레머 회장은 “베네수엘라 친중 정권에 대한 미군의 공격에도 중국은 여전히 남미 대부분 국가의 주요 무역·투자 파트너로 남아 있다”며 “17일 유럽연합(EU)이 중남미 국가 연합 메르코수르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것도 미국의 일방적 관세와 트럼프 보호무역주의가 낳은 집단적 반작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도 지난 1년은 거센 압박의 연속이었다. 슈미트 교수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겠지만 트럼프 시대 불확실성에는 대비 체계를 갖춰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으로선 굳건한 한·미 동맹의 기틀 위에서 ‘거래’를 넘어 ‘전략적 가치’를 트럼프 행정부에 끊임없이 각인시키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