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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정의선, 운전면허 없음"…韓 유일 F3레이서 신우현 특이사항

중앙일보

2026.01.18 12:00 2026.01.1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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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F3 무대에서 활약 중인 레이서 신우현. 오는 2030년까지 F1 무대에 진출하는 게 목표다. 사진 신우현
짧게 자른 머리와 단단한 몸매 그리고 말끝마다 “~했습니다”로 똑 떨어지는 말투까지. 지난 13일 서울 한남동 카페에서 마주한 레이서 신우현(22)의 첫 인상은 날이 서 있지만 느낌 좋은 군인 같았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차츰 이미지가 바뀌었다. 시속 300㎞의 질주와 0.01초의 승부를 이야기할 때, 차분하면서도 날카롭던 그의 눈빛이 꿈꾸는 소년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모터스포츠의 최고봉인 포뮬러1(F1) 월드 챔피언십 무대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하기 위해 도전 중인 그는 “남들보다 출발이 늦은 나에겐 시행착오와 실패까지도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16세 이전까진 평범한 학생이었다. 해외에서 공부하던 중 잠시 귀국해 국내에서 카트레이싱을 즐긴 이후 삶의 이정표가 확 바뀌었다. 신우현은 “유학 생활 내내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어 가슴이 답답했다”면서 “그렇게 힘든 순간에 운명처럼 레이싱이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후 몸과 마음의 주파수를 온통 레이싱에 맞췄다.

매일 거르지 않는 훈련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한다. 대부분 10세 이전에 레이서 과정에 입문한 여러 해외 경쟁자들과의 훈련량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서다. 코어 근육과 반사 신경을 키우는 게 핵심이다. 유산소와 근력 운동으로 시작해 반응운동과 두뇌운동까지 빠짐 없이 진행한다. 신우현은 “유산소를 하다가 숨이 턱까지 차올라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암산이나 패턴 찾기 등으로 두뇌를 자극한다”면서 “F3 레이싱카의 브레이크를 밟으려면 200kgf의 힘이 필요하다. 고속 코너 구간에선 호흡이 가빠진다. 레이싱 훈련은 극한의 상태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해내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레이싱 시뮬레이터에서도 매일 긴 시간을 보낸다. 선수 자신의 표현을 빌면, 이 또한 ‘눈이 침침해 잘 안 보일 때까지’ 반복한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F3 무대에서 활약 중인 레이서 신우현. 오는 2030년까지 F1 무대에 진출하는 게 목표다. 사진 신우현
훈련 스트레스는 다른 운동으로 푼다고 했다. “레이싱 도중엔 고장 등 내 노력이나 의지와 무관한 변수가 생기지만, 운동은 시간을 투자한 만큼 몸이 변하는 걸 담백하게 느낄 수 있어 스트레스를 풀기에 적격”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훈련하지 않을 땐 레이싱 관련 유튜브 시청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유일한 취미는 프랑스어 공부다. 이마저도 레이싱과 관련이 있다. 미캐닉(레이싱 차량 전문가)이나 국제자동차연맹(FIA) 관계자들 중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이 많다 보니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배우기 시작했다.

쉼 없는 노력은 그에게 ‘한국인 유일 F3 드라이버’라는 영광스런 타이틀을 안겼다. F3 풀시드를 획득해 올해 하이텍 TGR 소속으로 경쟁에 나설 예정이다. 신우현은 “F3 레이서는 변변한 수입 없이 ‘F1 무대에 오른다’는 꿈 하나만으로 연간 100회 정도 비행기를 타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극한 직업”이라면서 “고된 이동 일정으로 육체적·체력적 어려움이 가중되겠지만, 이마저도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하며 적응하고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지난 2024년 레이싱 도중 차량과 함께 7바퀴 반이나 구르는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타고 있던 차량이 완전히 부서질 정도로 심각한 사고였지만, 이튿날 경기 일정을 강행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사고가 트라우마로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결단이었다”고 털어놓은 그는 “그만큼 레이싱을 사랑한다”고 했다.

신재민 기자
신우현은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고문의 아들이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조카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현대가 출신이라는 집안 배경 덕을 본 것 아니냐”며 깎아내리려 한다. 이에 대해 신우현은 “금전적인 도움을 부인하진 않는다”면서도 “레이싱은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서 오직 실력으로 맞붙는 무대다.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이어왔다는 사실 만큼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F1을 소재로 지난해 개봉한 영화 ‘F1 더 무비’의 주인공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 분)는 레이스 막바지에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신우현도 이른바 ‘드라이버스 하이(driver’s high)’라 부를 만한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는 “초고도 집중 단계에 이르면 차와 완벽히 한 몸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도 몸이 알아서 운전을 컨트롤하는, 마치 자율주행 비슷한 경험으로 우승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F1이 올해부터 머신(레이싱카)의 무게와 크기를 줄이고, 내연기관과 전기모터의 비중을 80대20에서 50대50으로 바꾸는 등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차량 성능보다 드라이버의 기량, 특히나 완급 조절 능력이 이전에 비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진단했다.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웅장한 엔진 소리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든 2000년대 초반의 머신들이 더 사랑스럽다”고 언급한 그는 “하지만 환경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적응할 자신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우현은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카트 레이싱장을 방문했다가 ‘형을 따라 카트에 입문했다’는 아이들을 여럿 만났다”면서 “나를 롤 모델로 삼은 그 아이들을 위해서도 오는 2030년까지 F1 무대에 입성해 대회장에 태극기가 휘날리게 하겠다는 목표에 흔들림 없이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F3 무대에서 활약 중인 레이서 신우현. 오는 2030년까지 F1 무대에 진출하는 게 목표다. 사진 신우현



송지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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