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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세 중식 레전드가 허드렛일…흑백2 '후덕죽 사고' 열풍의 이유

중앙일보

2026.01.18 21:00 2026.01.1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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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경력의 76세 현역 요리사 후덕죽. 한국 중식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레전드다. 최근 종영한 '흑백요리사2'에 출연해 '후덕죽 사고'라는 유행어마저 탄생시켰다. 강정현 기자
후덕죽 사고.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 이후 뜬 유행어다. ‘고수가 베푸는 양보 또는 아량’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음식 경연 프로그램에서 58년 경력의 76세 현역 요리사가 허드렛일 마다치 않고 뛰어다니는 장면에 수많은 시청자가 감동했고, 끝내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그 주인공이 한국 중식의 산증인 후덕죽 사부다. 42년간 신라호텔 ‘팔선’의 대명사였고, 전설의 중화요리 '불도장'을 개발한 주인공이며, 현재는 2024∼2025년 이태 연속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 ‘호빈’의 총괄 셰프다. 쉽게 말해 역대 화교 요리사 중 가장 출세한 인물이다.

후 사부의 '흑백요리사2' 출연은 전혀 뜻밖이었다. 반세기 넘도록 한국 중식계의 지존으로 활약하면서도 언론과의 접촉은 극도로 삼갔기 때문이다. 절세무공의 은둔 고수가 ‘먹방’ 판치는 강호로 나온 셈이어서 첫 질문은 당연히 하산의 이유여야 했다.


Q : 수십 년간 언론을 멀리했는데 '흑백요리사2'는 어쩌다 출연하게 됐나.
A : ‘팔선’에 있을 때는 긴장하며 대기할 때가 많아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흑백요리사2'도 한 달을 거절하다가 승낙했다. 후배에게 귀감 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화면에 얼굴 한번 비치는 정도'로 생각했다가 거의 끝까지 갔다.


Q : 단체전에서 최고령 셰프가 주방 막내가 하는 일을 했다. '천하의 후덕죽'이 마늘을 다지고 참외를 절였다.
A : 축구를 하면 누구나 골을 넣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두가 공격수가 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수비수가 돼 골문을 지켜야 한다. 내가 하겠다고 했다. 주방에서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Q : 임성근 셰프가 후 사부 칼을 썼다.
A : 얼마나 급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빨리 요리를 마무리하는 게 중요했다. 쓰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Q : '팔선'에선 엄한 요리사로 유명했었는데, 방송에선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나왔다.
A : 지금도 주방에선 상당히 엄하다. 요즘도 영업시간 전에 양념통 위치가 제대로 돼 있는지 돌아다니며 확인한다. 방송에서 다르게 보인 건, 함께한 셰프가 다 쟁쟁해서다. 그들의 방식을 이해하려고 했다.


Q : 젊은 셰프 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
A : 손종원·정호영·샘킴 다 잘하는 셰프들이다. '요리괴물'은 오해를 받은 부분이 있는데, 같이 있을 때 굉장히 순했다. 손종원 셰프는 요리하는 자세가 부드러웠고 성품도 좋았다. 박효남 셰프가 감자를 돌려 깎은 장면을 기억하나? 요즘 젊은 셰프는 그런 걸 잘 모른다. 식재료가 다 손질해서 들어와서다. 박 셰프는 손가락 한 개가 없는 손으로 그런 기술을 습득했다. 우리 세대는 다 그렇게 일했다.
후덕죽 셰프를 전설로 만든 손. 손이 작고 손가락이 뭉툭했다. 강정현 기자

Q : '당근 지옥' 편도 크게 화제가 됐다. 5가지 당근 요리를 했는데 준비한 것인가.
A : 다 즉흥이었다. 음식이 떠오르면 바로 만들었다. 재료 하나로 30분 만에 요리를 하나씩 완성해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맨 마지막 '어향당근'을 만들었을 때가 새벽 네다섯 시였다. 피곤한지도 모르고 요리를 만들었다. 더 하라고 했어도 할 수 있었다.


Q : '당근 지옥'의 주인공은 단연 '당근짜장면'이었다. 어떻게 나왔나.
A : 처음엔 국수를 만들려고 했는데, 마땅한 소스를 못 찾았다. 겨우 찾아낸 게 춘장이어서 짜장면으로 바꿨다. 면처럼 채 썬 당근은 삶지 않았다. 쪘다. 나는 삶는 것보다 찌는 걸 선호한다. 찌면 맛과 모양이 살아서다. 당근을 찐 건 처음이었는데, 딱 5분만 찐 게 맞아떨어졌다.


Q : 춘장에 미소된장을 넣은 게 특이했다. 보통은 쌈장을 추가한다.
A : 하나의 비법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팔선' 때부터 짜장면을 만들 때 춘장에 미소된장을 넣었다. 예전부터 내 짜장면은 먹어도 속이 편하다고 했다. 그 비결이 미소된장이다.


Q : 결승전 주제가 '나를 위한 요리'였다. 결승에 진출했다면 어떤 요리를 하고 싶은가.
A : 솔직히 결승에 올라갈 줄 알았다. 대결 음식을 준비했고, 재료도 갖고 갔다. 불도장을 하려고 했다.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음식이니까. 새로운 스타일의 중국 황실 불도장을 선보이고 싶었는데 아쉽다.
후덕죽 셰프가 '호빈' 주방에서 웍을 잡았다. 후 셰프는 "중식 요리사는 불과 웍을 두고 싸워야 해서 항상 긴장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Q : 어릴 적 얘기를 하자. 무척 가난했다고 들었다.
A : 부모님은 중국 산둥(山東) 출신이고, 나는 6남매 중 넷째였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중1 때 돌아가셨다. 그 뒤로 형제가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친구들 집에서 얹혀살았다.


Q : 요리는 어떻게 시작한 건가.
A : 어머니가 서울 서소문동에서 중국집을 했었다. 주방장이 웍 돌리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몰래 주방을 들락거렸다. 된통 혼난 적도 있지만, 주방장이 요리를 알려줬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볶음밥을 만들어 형 누나 도시락을 싸줬다. 조리사의 길을 걸은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다. UN센터호텔 주방에서 허드렛일하며 시작했다.


Q : 중식 커리어는 '용궁'에서 시작했다.
A : UN센터호텔 주방은 양식이었다. 중식을 배우고 싶어 무작정 '용궁'을 찾아갔다. 용궁은 당시 최고급 중식당이었다. 처음에는 바로 거절당했다. 다시 찾아갔고 또 거절당했다. 그렇게 몇 달을 찾아가니까 받아줬다. 내 끈기를 좋게 봐줬던 게다. 주방에 빈자리가 없었는데도 받아줬다. 주방장 빨래도 하고 심부름도 하면서 버텼다. 쉬는 날이 있었지만 선배들 눈치 보느라 일만 했다. 선배에게 잘 보여야 하나라도 배울 수 있었다. 처음엔 월급도 없었다. 4개월째 첫 월급을 받았는데 2만원으로 기억한다.


Q : 그 시절엔 요리사에 대한 편견도 심했다고 들었다.
A : 결혼하기 전 장모님께 처음 인사하러 갔을 때 바로 쫓겨났었다. ‘남자가 무슨 조리사냐’며 요리사가 굉장히 푸대접받던 시대다. 결국 식구 모두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단둘이 식을 올렸다.
1995년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앞자리 오른쪽) 내외와 후덕죽 셰프(뒷자리 가운데). 사진 후덕죽

Q : 신라호텔은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A : 반도호텔이 문을 닫아 누나가 있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 중국집에서 일하며 광둥 요리를 배웠다. 소중한 경험이었다. 한국 중식은 산둥 요리가 중심이어서 광둥 요리를 처음 접했다. 비자 때문에 들어왔다가 눌러앉았다. 마침 신라호텔이 문을 열어 개관 멤버로 들어갔다. 그리고 2년 뒤 '팔선'을 열었다. 처음엔 부주방장이었으나 바로 주방장이 됐다.


Q : '팔선' 시절 장쩌민(江泽民) 중국 전 주석의 일화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A : 95년 중국 주석 최초로 장쩌민 주석이 방한했다. 서울신라호텔에 묵었는데, 서울 일정뿐 아니라 제주도 일정까지 따라가 음식을 만들었다. 장 주석이 한국을 떠나기 전 객실로 나를 불러 '중국 본토 요리보다 훌륭했다'며 기념사진도 찍어줬다.


Q : '팔선'의 또 다른 전설이 불도장이다. 어떻게 개발하게 됐나.
A : 요리사로서 최고의 정점을 찍은 건 94년 주방 출신 최초로 상무로 승진했을 때다. 불도장 덕분이었다. 87년 사회가 혼란했을 때 개발한 신메뉴였는데, 신라호텔이 국내 호텔 1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시절 삼성전자가 아니라 '팔선전자'란 말이 돌 정도였다.


Q : 긴 세월 삼성가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A : 이병철, 이건희 회장 모두 입맛이 소박했다. 귀하고 비싼 음식보다 짜장면·탕수육 같은 평범한 음식을 더 좋아했다. 특히 이병철 회장은 소식가였다. 식사하는 모습도 항상 조용하고 점잖았다. 이병철 회장이 건강이 안 좋았을 때 일본에서 약선요리를 배워 만들어준 적이 있다.
후덕죽 셰프를 상징하는 메뉴는 단연 불도장이다. 중국 최고급 보양식인 불도장을 1987년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 현재 몸담고 있는 '호빈'에서도 인기 메뉴다. 사진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
후 사부가 인터뷰에서 강조한 사자성어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의식동원(醫食同源).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뜻이다. 후 사부가 이병철 회장에 해준 약선요리도, 몸에 좋은 재료가 가득한 불도장도 그 철학에서 나온 음식이다. 후 사부는 평생 화학조미료는 물론이고 약품으로 색을 낸 재료도 안 썼다고 강조했다.

다른 하나는 상경하애(上敬下愛)다. 윗사람은 공경하고 아랫사람은 사랑해주는 마음을 가리킨다. 그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부하에게 시키지 말라"고 교육한다고 했다. 그 마음으로 팔순을 바라보는 노장이 마늘을 다졌나 보다. 후 사부가 일하는 호빈은 5월까지 예약이 마감됐다. 가끔 '당근딤섬'을 이벤트 삼아 내기도 한단다.
후덕죽(侯德竹)
후덕죽 셰프가 16일 오후 앰베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1949년 3월 서울 서소문동에서 태어났다. 68년 서울 UN센터호텔에서 조리사 생활을 시작했고, 72년 반도호텔 ‘용궁’에서 중식 조리를 배웠다. 일본 유학 후 77년 호텔신라 개관 멤버로 합류했고, 이태 뒤 서울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의 주방장을 맡았다. 87년 불도장(佛跳牆)을 국내에 처음 선보였고, 94년 조리사 최초로 호텔신라 임원(조리총괄 이사)에 올랐다. 2019년 42년간의 팔선 생활을 뒤로하고 르메르디앙 서울 호텔의 ‘허우’로 옮겼다. 2022년부터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 ‘호빈’을 지휘하고 있다.



손민호.백종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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