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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혁당 사건' 故 강을성 사형 50년 만에 재심 무죄…재판부 "유족에 사과"

중앙일보

2026.01.18 22:49 2026.01.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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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고 강을성씨가 50년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 전경. 사진 서울동부지법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고(故) 강을성씨가 19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76년 형 집행 이후 50년 만이다.

이날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부장 강민호)는 강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단순히 북한에서 발간한 논문을 읽었다고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하고 동조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 그 외엔 달리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고 강을성씨 유족이 19일 재심 무죄 판결 직후 서울동부지법에서 환영 입장을 밝히는 모습. 연합뉴스
선고 직후 재판부는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밝혔다. 강 부장판사는 “긴 세월 동안 오해 속에서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오신 그 고통에 대해 위로를 드린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오류를 범한 사법기관의 일원으로서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죄와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고 했다. 이어 “비록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았다고는 하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했다. 과거 사법부가 북한과의 극심한 이념적 대결에 대한 시대 상황이나 국가의 안위라는 명분만을 앞세워 한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지키는 일에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고 했다.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유족은 눈물을 흘렸고,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강씨의 큰딸 강진옥(65)씨는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을 만나 “사형 집행 이후 한 달이 넘어서 이상한 나무 박스를 (아버지) 유골이라고 가져오고, 노란 봉투에 타이핑된 게 유서라고 줬다”며 “그동안 단 한 번도 아버지가 간첩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사형 단두대에 섰을 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온몸이 저릴 정도로 아팠다.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던 아버지의 삶이 재조명됐다는 게 가장 큰 의미”라고 했다.

1968년 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체포된 피고인이 재판 받는 모습. 중앙포토
1974년 박정희 정권은 민주수호동지회에서 활동하던 강씨 등을 체포하며 북한의 지령을 받고 통혁당을 재건하려는 간첩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육군 보안사령부는 이들을 연행해 고문하는 등 강압적인 방식으로 진술을 얻어냈고, 재판에서 끝내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군무원으로 근무하던 강씨도 이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고, 1976년 형이 집행됐다. 강씨 유족은 2022년 11월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2월 재심 개시 결정이 이뤄졌다.

강씨에 앞서 고 박기래씨 등 4명도 통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사형 선고를 받은 뒤 1991년 가석방된 박씨는 2023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간첩단 우두머리로 지목돼 16년간 옥살이했던 고 진두현씨와 징역 10년이 확정됐던 고 박석주씨도 지난해 5월 대법원에서 혐의를 벗었다. 1976년 사형 선고를 받아 1982년 형이 집행된 고 김태열씨는 지난해 8월 서울고등법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68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통혁당 재건위 사건을 발표하면서 공개한 증거물. 중앙포토
검찰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항소를 포기한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은 입장문을 통해 “약 50년 동안 흩어진 기록을 모아 확인하는 절차를 인내하며 오랜 시간 기다려주신 피고인과 유족에게 다시 한번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한편, 강씨의 재심 소송을 대리한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검찰이 아직 무죄 판결을 받지 못한 유족을 위해 직권으로 재심을 신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족들이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 과연 정의에 부합하냐”며 “과거 반성 차원에서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삼권([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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