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19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전략적 동반자’라는 명칭에 부합하는 미래지향적인 수준으로 양국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 언론 발표에서 “실용주의로 대표되는 저의 국정 운영 철학과 멜로니 총리님의 개혁 정신은 무엇보다 민생과 성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양국은 2018년 이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확대 회담에서 “양국 간의 관계 잠재력에는 한계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라며 “과학 강국으로서의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강점과 기술 강국인 대한민국의 핵심 DNA가 힘을 모으면 양국이 큰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탈리아가 유럽연합(EU)에서 한국의 네 번째 교역 상대국이고,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한국인이 연간 100만명에 이른다는 점을 짚으며 “총리님의 이번 방한, 그리고 저의 이탈리아 방문을 통해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했다. 멜로니 총리는 이날 이 대통령의 이탈리아 국빈 방문을 공식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본관 로비에서 직접 멜로니 총리를 맞이했다. 짙은 남색 정장에 파란색 넥타이를 맨 이 대통령은 멜로니 총리에게 “한국에 오느라 고생하셨다”며 “이탈리아 총리께서 한국에 오신 것은 19년 만”이라고 인사했다. 한국을 공식 방문한 이탈리아 총리는 2007년 4월 로마노 프로디 전 총리가 마지막이었다.
멜로니 총리는 전날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자리에서 받은 6·25 전쟁 당시 한국에 파견된 이탈리아 의료진의 사진 앨범을 언급하며 “이렇게 가까운 관계인데도 19년 동안 총리가 방한하지 않았다는 게 놀라울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이탈리아는 전통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창의력과 혁신 등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똑같은 가치를 공유한다”며 “양쪽 국가에서 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가 어떤 분야인지 더 탐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과 멜로니 총리는 회담 후 공동 언론 발표를 통해 한·이탈리아 비즈니스 포럼을 새로운 기회 창출의 장으로 활성화하는 등 교역 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기초 응용 분야 공동 연구 지원과 인공지능(AI)·우주항공·방산 등 과학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방국으로서 한반도 긴장 완화와 세계 평화의 가치 수호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는 한편 문화·인적 교류 협력도 늘려나가기로 했다. 멜로니 총리는 “무엇보다 양국의 공급망을 보다 강화하고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핵심 광물 분야에 대한 전략적인 공동 연구 등을 시급히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양국은 ▶시민 보호 협력 ▶문화유산 및 경관 보호 ▶반도체 산업 협력 등 3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두 정상은 다음달 6일 이탈리아에서 개최되는 2026년 겨울올림픽에 관해서도 대화를 나눴다. 이 대통령은 “멜로니 총리님께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때 이탈리아를 방문할 우리 선수들과 국민의 안전에 각별한 관심을 당부드렸다”며 “(멜로니 총리가) 우리 선수촌을 직접 방문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셔서 특별히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제가 여러 차례 우리 총리님을 뵙고 보니까 지금은 아주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며 멜로니 총리에 대한 친근감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이 대통령과 멜로니 총리의 만남은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계기 양자 회담과 지난해 11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이어 세 번째다. 회담 말미와 공식 오찬에서는 이탈리아어로 “그라찌에(Grazie·감사합니다)”, “본 조르노(Buon Giorno·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최근 이탈리아에서도 K컬처의 인기가 높아져서 한국을 찾는 이탈리아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하자, 멜로니 총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시다시피 저희 딸이 K팝 팬”이라며 “소프트파워 분야에서도 협력 증진 방안을 탐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멜로니 총리는 지난해 8월 딸 지네브라(10)와 함께 밀라노에서 열린 블랙핑크 콘서트를 관람한 적이 있다. 멜로니 총리는 오찬에서 “문화야말로 양국 협력의 기본”며 “K컬처의 성공 뒤에는 지극히 세계적인 것과 지극히 국가적인 것을 오묘하게 섞은, 굉장히 똑똑한 선택과 전략이 있었다”고 했다.
이 대통령과 멜로니 총리의 공동 성명에는 “평화롭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역내 안정 증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공통된 견해를 공유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및 안정 실현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중국이나 북한에 관한 구체적 표현은 담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