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4%로 4년 연속 한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 나왔다. 역대 가장 오래 이어지고 있는 한·미 기준금리 역전에 이어 성장률 역전까지 장기화하며 환율 방어에 먹구름이 꼈다.
19일 IMF가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10월 전망보다 0.1%포인트 오른 1.9%다. 세계 경제의 성장률은 3.3%로, 10월 전망 때보다 0.2%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미국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IMF는 올해 미국 성장률을 2.4%로 종전 전망보다 0.3%포인트나 높게 잡았다. 미국의 재정 부양과 금리 인하 효과, 무역 장벽으로 인한 경기 하락 압력이 완화됐다는 이유에서다.
미국과 한국의 성장률 격차는 0.5%포인트로 10월 전망 때보다 0.2%포인트 더 벌어지게 됐다. IMF 전망대로 경제가 흘러간다면 한국과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023년 이후 4년 연속 역전된다. IMF에 따르면 미국의 성장률은 2023년 2.9%로 한국(1.6%)을 추월했고 이후 2024년과 지난해에도 각각 0.8%포인트, 1.1%포인트 차로 한국을 앞질렀다.
미국은 한국보다 경제가 성숙됐고,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따져도 약 15배나 크다. 과거 한·미 경제성장률 역전은 일상적인 풍경이 아니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1980년(오일쇼크), 1998년(외환위기), 2009년(세계금융위기), 2019년(미·중 무역갈등) 정도 때만 일시적으로 성장률 역전이 벌어졌다.
미국은 인공지능(AI) 등과 관련해 돈과 사람이 몰리고 있다. 각종 혁신 등으로 생산성이 올라가고 있는 건 물론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3분기 GDP 성장률의 70% 가량이 인공지능 투자와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가계 소비에서 나왔다. 반면 한국은 만성적인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경제성장 동력이 약해지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대미 투자 압박으로 국내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등 성장 여력이 떨어지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한국은 정치적 리스크와 트럼프 이후 대외 리스크 등이 겹치며, 코로나19 이후 경제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 경제의 기초 체력도 역전된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23년 각각 2.41%와 2.44%로 0.03%포인트 차로 역전된 후 매년 격차가 커지고 있다. 올해 한국과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각각 1.7%와 2%로 미국이 0.3%포인트 높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동원할 수 있는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 물가 상승 등 부작용 없이 최대한 이뤄낼 수 있는 성장률이다. 한국의 경제 체력과 활력 자체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성장률 역전이 장기간 이어지는 와중에 한·미 간 금리차도 2022년 7월 이후 역대 최장 기간 이어지고 있다. 현재 기준금리는 한국 연 2.5%, 미국은 연 3.5~3.75%로 상단 기준으로는 1.25%포인트 차이가 난다. 한국은행 입장에선 금리 인상은 부진한 내수가, 금리 인하는 원화가치와 부동산 가격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과 금리 역전이 장기화되며 원화가치도 위협받고 있다. 더 나은 수익률을 따라 움직이는 자본 입장에서는 경제성장률이 높고,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돈이 흘러가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의 올해 1월 1~16일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32억4980만 달러로 지난해 12월 순매수 규모 18억7380만 달러를 이미 앞질렀다.
권용오 한은 국제금융연구팀장은 지난 14일 ‘외환시장 환경변화와 공동 정책 심포지엄’에서 “최근 낮은 원화가치는 한국과 미국 간의 성장률과 금리 격차, 미국 주식시장의 장기간 고성장 지속과 한국의 고령화, 주력 산업 경쟁력 악화 등에 우려를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에 뒤처지는 건 한국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IMF가 예측한 주요 선진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영국(1.3%), 독일(1.1%), 프랑스(1.0%), 일본(0.7%), 이탈리아(0.7%) 등 모두 미국을 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 선진국 그룹의 성장률 평균은 1.8%로 예측됐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 교수는 “AI 등 각종 혁신을 미국이 이끌고 있다 보니 유럽과 일본 등 상당수 국가가 상대적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한국은 고령화 등 인구구조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반도체 등 첨단 산업 기반이 마련된 만큼 각종 산업 정책 등을 통해 혁신을 뒷받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IMF는 세계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더 크다며 소수의 AIㆍ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집중과 무역 불확실성 등을 리스크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보고서는 “AI의 생산성·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약화될 경우 급격한 자산가격 조정이 발생해 금융리스크가 전이·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IMF는 연간 네 차례(1·4·7·10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한다. 4월과 10월엔 전체 회원국을 대상으로 전망을 하고, 1월과 7월엔 한국을 포함한 주요 30개국에 한해 수정 전망을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