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서산에서 대산까지 차가 밀려서 1시간은 족히 걸렸는데, 요즘은 30분도 안 걸립니다. 그만큼 일거리가 없어서 사람들이 싹 빠져나간 거죠.” 강태구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 한화토탈지회장은 충청남도 대산 석유화학 산업단지의 침체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정부 주도의 석화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대산 산단은 다음 달부터 ‘1호 구조조정’이 이뤄질 예정이다.
전라남도 여수 석화 산단도 사정은 비슷했다. 화섬노조 광주전남지부 관계자는 “한때 여수 석화 단지에서 일하는 건설 플랜트 노동자가 7000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2000명도 채 안 된다”며 “그럼에도 정부에서 고용 대책에 관한 언급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산·여수·울산 등 3개 석화 산단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지역 사회에선 고용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석화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전국 나프타분해설비(NCC)를 총 270만~370만t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가동 예정인 에쓰오일 샤힌프로젝트를 포함한 국내 전체 NCC 설비용량의 18~25% 수준이다.
문제는 유휴 인력이 발생하면서 고용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NCC 구조조정이 정부안대로 이뤄진다면 고용 인원은 최소 2500명에서 최대 5200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석화 산업뿐 아니라 소재, 자동차·부품, 정밀화학, 섬유 등 다른 산업으로도 영향이 퍼져나갈 수 있다. 지난해 6월 발간된 화학산업협회 편람에 따르면 3개 산단 고용 인원은 총 4만7600명이다.
구조조정 대상인 원청 석화사들은 모두 “인위적인 인력 감축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신규 채용을 줄여 자연 감소를 유도하고, 기존 설비 인력은 전환 배치를 통해 유지하겠다는 설명이다. 석화사 관계자는 “신규 공장 증설도 멈춰있어 고용을 유지하기가 쉽진 않지만, 스페셜티 등 신사업을 확대해 보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하청 단계에서부터 고용 충격이 나타나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미 원청이 발주를 줄이면서 하청업체 일거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수 산단의 경우 종사자의 90% 이상이 석화 산업에서 일하고 있어 피해가 크다. 노조 관계자는 “협력업체는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데, 자연스럽게 계약을 끊는 방식으로 사실상의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직무 전환으로 충격을 완화하기도 벅차다. 장치산업 특성상 공정마다 기술과 경험이 크게 다른 만큼 40~50대 장기 근속자가 다른 공장으로 이동해 적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 지회장은 “같은 화학 분야라도 어떤 장치를 갖고 어떤 공정을 거치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변수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3개 산단을 모두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 고용유지지원금, 사업주훈련지원, 생활안정자금융자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 역시 6개월 한정 조치다. 지난해 8월 가장 먼저 지정된 여수 산단의 경우 다음 달이면 해제된다. 여수시는 기간 연장을 요청했지만, 현행 제도상 연장이나 재지정은 어렵다는 설명이다.
결국 구조조정 과정에서 원하청을 아우르는 실질적인 고용 대책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지역사회 고용 문제를 포함해 전반적인 지원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