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12일째 기록을 ‘새로고침’하며 4900선을 넘어섰다. 19일 종가 기준 4904.66으로, 연초 대비 16.38% 상승했다. 1984년과 2019년 세운 역대 최장 상승 랠리(13거래일 연속) 기록에 바짝 다가섰다. 이제껏 가본 적 없는 코스피 5000선이 눈앞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지수만 풍년’이다. 특정 업종에 대한 과도한 쏠림으로 국내 증시의 구조적 취약성은 더 심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9일 기준 ‘반도체 투톱’의 시가총액 비중은 35.5%에 달한다. 흥국증권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최근 한 달간 늘어난 코스피 시가총액의 64.3%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나왔다. 올해 초부터 계산해도 기여도는 49.2%다. 코스피 시총 상승분의 절반가량이 반도체 두 종목에 쏠렸다는 의미다.
사실상 ‘반도체 주가=코스피’란 분석이 나올 정도다. 반도체는 물론 자동차·조선·방산·로봇 같은 대형 수출주로의 ‘쏠림’이 심한 만큼 대외 변수에 대한 취약성도 따라 커졌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한국 등 반도체 기업들을 향해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이영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대만과 미국의 반도체 관련 관세 협상에서 확인되듯, 미국에 대한 투자와 생산능력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관세가 적용될 것”이라며 “시장에 얼마나 부담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역대급 불장에도 내수주·중소형주가 소외되는 ‘K자형 양극화’가 굳어지고 있다. 이달 들어(19일 기준) 음식료·화장품·유통 등 대표적인 내수주로 구성된 KRX 필수소비재는 1.34% 상승에 그쳤다. 코스피 중형·소형주를 반영한 KRX중형·소형TMI도 오름폭은 각각 3%대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코스닥 지수도 4.63% 오르는 데 그쳐, 코스피 상승률의 약 4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내수 부진에 원화값 하락(환율은 상승)까지 더해져 수출·내수주 양극화를 키우는 중이다.
중·소형주 중심의 미국의 러셀2000 지수가 최근 11거래일 연속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 대비 더 높은 상승률을 보인 것과는 대조된다. 미국은 지수 상승 국면에서 대형주 비중을 줄이고 중·소형주로 자금이 옮겨가는(순환매) 흐름인데, 코스피는 호재가 반영된 일부 대형주까지만 온기가 번지고 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사이즈가 큰 일부 종목만 상승하는 쏠림 현상이 쉽게 바뀌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개인투자자가 많이 오른 한국 주식을 팔고 미국 시장으로 이동하는 흐름도 ‘국장’의 한계로 꼽힌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16일 기준) 개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32억4983만 달러(약 4조8000억원)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개인은 코스피에서 4조2628억원을 순매도했다.
개인의 미국 주식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원화는 약세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미국 주식을 팔고 국내 주식을 일정 기간 유지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국내시장 복귀계좌(RIA)’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서학 개미의 국내 증시 탈출은 여전했다.
정부는 달러 자금 유입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세계국채지수(WGBI)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다만 WGBI, MSCI 선진 지수 모두 중장기 자금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 당장의 ‘원화 투매’ 흐름을 돌려놓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기 보유자에 대한 배당소득세 감면 등 실질적인 장기 투자 유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