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은행에서 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하는 ‘머니 무브’ 현상이 더 심해졌다. 예금자가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는 돈을 뜻하는 요구불예금에서 새해 들어서만 32조원 넘게 빠져나갔다. 정기예금 잔액도 6000억원 넘게 줄었다. 반면 언제든 주식을 살 수 있는 증시 계좌에는 같은 기간 역대 최대 규모인 92조원 규모의 뭉칫돈이 몰렸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 16일 기준 641조8816억원이다. 지난해 12월 말(674조84억원)에서 약 보름 만에 32조1268억원(약 4.8%)이 줄었다. 새해 첫 영업일인 지난 2일에 15조여 원이 빠져나간 데 이어 다음 영업일(5일)에도 11조원 가까운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요구불예금은 당좌·보통 예금 등으로, 이자는 적은 대신 예금자가 언제든 돈을 넣고 뺄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선 적은 비용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이다. 은행의 핵심 자금 조달처인 정기예금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해 12월 5대 은행의 정기예금이 32조7034억원 감소했고, 올해 들어서도 6000억원 넘게 더 나갔다. 정기예금은 미리 정해둔 예치 기간(만기) 전에 인출하면 이자에서 손해를 보기 때문에 요구불예금보다 유동성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정기예금에서도 돈을 빼냈다.
금융권에선 이렇게 은행을 빠져나간 금액이 주식 시장에 몰리는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언제든 주식을 살 수 있게 미리 계좌에 넣어둔 돈인 투자자 예탁금은 16일 기준 91조2182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12월 말 87조8291억원에서 보름 새 3조3891억원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초와 비교하면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코스피가 급상승하며 전에 없는 속도로 주식시장에 돈이 쏠리고 있다”며 “나만 소외됐다는 ‘포모(FOMO)’ 영향으로 비교적 옮기기 쉬운 여윳돈에 손을 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이 앞다퉈 내놓은 종합투자계좌(IMA) 영향도 있다. IMA는 증권사가 부도·파산하지 않으면 원금이 사실상 보장되고, 은행 예금보다 이자율이 높아 투자 수익 기대가 큰 상품이다. 한국투자증권이 지난달 내놓은 1호 상품엔 출시 나흘 만에 1조원이 넘는 개인·기관 자금이 유입됐다. 미래에셋증권의 1호 상품에도 약 5000억원이 몰려 완판됐다.
이런 머니무브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코스피 5000이 임박하면서 증시를 향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어서다.
은행권은 시름이 깊다. 비교적 이자가 낮은 요구불예금에서 돈이 빠져나가면, 은행채 발행이나 고금리 예금 확대 등 비용이 높은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하면 건전성 관리에도 경고등이 들어올 수 있다.
결국 은행들이 예금금리 인상 카드를 쓰면 대출금리도 덩달아 뛸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저축성 수신금리는 지난달 평균 연 2.816%로 나타났다. 전월 평균(연 2.568%)보다 0.248%포인트 오른 수치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도 두 달 연 속 상승했다. 은행권 조달 비용이 높아지는 요인들로 대출금리가 밀려 올라갈 수밖에 없단 전망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조도 끝났다고 보는 시장 분위기 속에서 대출금리가 더 낮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