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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사위에 힌트 준 축구…소고춤 명인 “춤은 공과 같다”

중앙일보

2026.01.19 07:30 2026.01.1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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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태가 자신의 이름을 건 무대에서 선보인 ‘채상소고춤’ 모습. [사진 PRM]
김운태(63)가 추는 채상소고춤은 하나의 독보적인 장르다. 채상소고춤은 채상모 끝에 달린 길고 흰 띠를 돌리며 소고를 치는 춤이다. 영남과 호남, 웃다리(경기·충청) 등 지역마다 각기 다른 채상소고춤의 특징을 한데 모아 김운태는 그만의 춤사위를 완성했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와룡동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개막한 ‘김운태 전(傳)’. 김운태가 솟구치며 소고를 치는 ‘솟음벅구’에 이어 휘모리장단에 맞춰 공중에서 몸을 45도 비트는 ‘자반 뒤집기’를 선보이자 140석 규모 객석에선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김운태와 33년째 인연을 이어왔고 이번 공연을 연출했으며 사회자로도 나선 진옥섭 담양군문화재단 대표이사가 “(김운태가) 춤추기엔 눈썹도 무거운 나이”라고 농을 쳤지만, 농익은 그의 몸짓은 이날 70분간 이어진 ‘김운태전’을 꽉 채우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김운태의 아버지가 유랑극단 ‘호남여성농악단’을 운영했다. 그는 여섯살 때 아버지의 농악단에 들어가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듬해부터는 김제 농악의 명인 백남윤으로부터 소고춤을 사사했다.

김운태. [사진 구기훈/PRM]
시대 흐름에 밀려 유랑극단의 인기는 저물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1982년 김덕수·이광수와 함께 ‘사물놀이’를 만들며 전국 각지는 물론 일본·미국· 독일·프랑스 등 세계 곳곳에서 공연을 펼쳤다. 국악 공연 전용 극장을 만들고 싶어 1995년 문을 연 서울두레극장의 경영이 어려워지며 결국 부도를 내고 옥고를 치르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춤은 더 나아갔다. 지난 1999년 서울세계무용축제 출연 이후 ‘김운태류 채상소고춤’은 한국 전통춤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일본 오사카, 2014년 미국 뉴욕에서 그만의 춤사위를 펼쳤다. 김지영·김주원 등 세계적인 발레리나와 합동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또 그는 자신 춤의 모태가 된 여성농악단 복원을 목표로 지난 2012년 ‘연희단팔산대’를 창단해 15년째 운영하고 있다. 연희단팔산대의 훈련 방식은 독특하다. 그는 단원들과 축구를 하며 체력을 키우고 춤도 익힌다. “춤은 체력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공연이 다가오면 오히려 연습을 크게 줄이는 게 그의 습관이다. 틀에 박히는 공연을 싫어해서다. 대신 그가 좋아하는 오토바이 ‘할리 데이비슨’을 탄다고 한다. 진옥섭은 “김운태는 오토바이 위에서 리듬감을 익히고 순간적인 몰입력도 키운다”라고 전했다.

김운태는 소리에도 능하다. 이날 공연은 그의 비나리로 시작됐다. 연초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많은 복을 내리기를 기원하는 소리다. 연희단팔산대 소속 소리꾼 장보미가 판소리 ‘심청가’를 부를 때 김운태는 무대에 앉아 고수 노릇을 했다. 김운태와 함께하느라 입단 후 축구가 소리보다 더 늘었다는 장보미의 소리에 관객은 추임새로 화답했다.

김운태는 “저의 예술은 거창하지 않다”며 “결국 판은 누가 혼자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호흡이 이어져 만들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운태전’은 지난 16~18일에 이어 오는 23~27일에도 관객을 만난다. 8회 공연만 해도 무용계에선 보기 드문 ‘장기 공연’으로 꼽힌다. 연장 공연도 검토하고 있다. 진옥섭은 “채상소고춤의 새 유파를 연 김운태가 국내 전통 예술의 소극장 장기공연의 물꼬도 트기 위한 시도”라고 강조했다.





하남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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