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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체포될까 두려워”…조지아, 아직도 그날 악몽 못 잊었다

중앙일보

2026.01.19 08:10 2026.01.1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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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 있는 한 인력 공급업체 사무실 모습. 20년 넘게 서배너에서 인력 파견 사업을 해 온 이 업체는 지역경제 침체로 일자리가 줄어든 가운데 한국 기업들에 사람들을 취업시키기 위해 한글 브로슈어를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강태화 특파원
지난 15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출입로 ‘LG대로’엔 트럭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본관 건설은 끝났지만, 아직 설비 작업이 완료되지 않아 배터리 공장은 가동 전이었다.

지난해 9월 이곳에서 발생한 한국인 317명을 포함한 475명 근로자의 무차별 구금 사태는 취임 1년을 맞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와 이민 정책이 충돌하며 모순을 일으킨 대표 사례로 꼽힌다. 서배너에서 만난 근로자들은 아직 당시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듯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배터리 공장 앞 공터에서 히스패닉계 부부가 근로자들에게 팔 남미식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년간 이곳에서 영업했다는 이들은 “체포된 사람의 대부분은 정상적 비자가 있는데도 비극이 벌어졌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라틴계는 무서워 돌아오지 못했다”며 “어렵게 돌아온 사람들도 언제 체포될지 몰라 일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9월 미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ICE 요원이 직원을 체포하고 있다. [사진 ICE 영상 캡처]
도시락을 집어든 LG엔솔 협력사 소속 크리스는 “당시 나는 단속을 피했지만, 동료들은 다 잡혀갔다”며 “잘못이 없는데 죄인 취급을 받으며 언제 잡힐지 걱정하는 게 너무 슬프고 두렵다”고 말했다.

서배너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구금 사태엔 지난 1년간 트럼프 2기 행정부를 규정하는 핵심 정책이 어떻게 구현됐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책의 한 축인 관세를 무기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을 압박해 대미 투자를 강제했다.

그런데 정책의 또 다른 한 축인 강경한 이민 정책이 모순을 자초했다. 미국 첨단산업의 기초이자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공장을 만들던 한국인 전문인력들을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단속 성과를 채우기 위한 손쉬운 ‘먹잇감’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석 달이 넘게 지났지만 사실상 추방됐다 재입국한 한국인 근로자들은 “비참하게 끌려가는 장면을 한국 가족들까지 다 봤다”며 한사코 실명 인터뷰를 거절했다. A씨는 “구금 사태 이후 ESTA(전자 여행 허가제)를 제시해도 ‘LG 공장 간다’고 하면 프리패스 입국이 된다”며 “이럴 거였으면 그 사태가 왜 났던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운타운에서 만난 현대차 직원 카일도 “서배너에는 항만 관련 일자리밖에 없는데 외국 기업의 투자로 좋은 일자리가 늘어났다”며 “일자리를 만들어줄 공장을 짓는 기술자를 추방한 건 완전한 모순”이라며 구금 사태를 비판했다.

현지 한국 기업들은 구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 노력하고 있다. LG엔솔은 “현지 일자리를 뺏는다”는 주장과 관련해 구금 사태 전 200여 명 수준이던 현지 채용 규모를 두 배 이상 늘렸다. 현대차는 지역사회 공헌 차원에서 지난해 10월 서배너주립대에 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강태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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