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삼성 TV. 이 자리는 결코 운이 좋아 얻은 게 아니다. 화면 비율 1인치를 늘리는 실험에서 시작해, 디자인과 기술을 결합한 혁신을 거치며 40년 가깝게 회사와 임직원이 역량을 쏟아부은 결과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7년부터 매출과 출하량(판매대수) 모두 18년 넘게 ‘TV 왕좌’를 지키고 있는데, 그런 삼성 TV가 10년 만에 경영진단 대상이 됐다.
19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TV를 주력으로 하는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는 지난해 10월 경영진단에 들어갔다. 2015년 이후 10년 만이다. 삼성 경영진단은 일종의 내부감사로, 약화한 사업 경쟁력을 쇄신하는 게 목적이다. 이번에도 TV 사업 구조와 비용, 조직 운영 전반은 물론 포트폴리오 개편 가능성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부에서 공감대를 얻은 명확한 돌파구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삼성 TV의 성공은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 시절에 쌓은 제품 혁신의 결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96년 출시된 ‘명품 플러스원 TV’는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라”는 광고 문구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4대3이던 화면 비율을 12.8 대 9로 확장해, TV 경쟁의 기준을 ‘크기’와 ‘완성도’로 바꿔놨다.
2006년 선보인 ‘보르도 LCD TV’는 삼성 TV 역사에서 분기점으로 꼽힌다. 레드와인이 담긴 와인잔을 형상화한 디자인에 기술력을 결합한 이 제품은 TV를 단순한 방송 수신기가 아닌 생활 공간의 오브제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고, 세계 TV 시장 1위의 확실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제 과거의 성공 공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영진단의 배경에는 중국 TV 업체들의 빠른 추격이 있다. 중저가 시장을 넘어 미니LED(발광다이오드)와 초대형 TV 등 프리미엄 영역까지 잠식하면서, 삼성의 기존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판단이다. 여기에 글로벌 TV 수요 둔화까지 겹치며 수익성 압박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글로벌 TV 출하량 점유율은 2021년 19.8%에서 지난해 3분기 17.9%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중국 TCL은 11.5%에서 14.3%, 중국 하이센스는 8.7%에서 12.4%로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업계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물량 공세가 삼성의 프리미엄 중심 전략을 정면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삼성전자는 2024년 인사에서 핵심 계열사 중 역대 가장 젊은 용석우 사장(1970년생)을 TV사업 사장으로 선임하며 혁신의 메시지를 다졌다. 하지만 가전 수요 둔화, 시장 경쟁 격화 등 대외 리스크와 정책 변수 속에 지지부진한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TV와 가전을 합친 VD·DA 부문 매출은 2025년 1분기 14조5000억원에서 2분기 14조1000억원, 3분기 13조9000억원으로 계속 줄어들었다. 영업이익도 지난해 3분기 1000억원 안팎의 적자로 돌아섰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4분기에도 1000억~30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전망도 낙관적이진 않다. 증권가에서는 2026년 삼성전자 VD·DA 부문의 영업이익이 2025년 대비 2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본다. 매출은 소폭 늘어날 수 있지만, 판매단가 하락과 경쟁 심화로 이익률 방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쟁 심화로 VD·가전 사업의 부진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경영진단이 일정 부분 정리됐다는 입장이다. 용석우 VD 사장은 최근 ‘소비자 가전쇼(CES 2026)’에서 “올해 TV 시장은 (월드컵 등) 여러 이벤트가 예정돼 있어 소폭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시장 환경을 반영해 라인업을 재편하고 프리미엄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삼성이 내부적으로 내세운 해법은 인공지능(AI) 전략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개인화 추천 등 스마트홈 연계를 앞세운 ‘AI TV’가 절대적 경쟁 우위를 가져갈 카드가 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경영진단 이후에도 내부에선 사실상 판을 바꿀 만한 해법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당분간은 뚜렷한 전환점없이 고민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