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의 A 태권도장은 부모 사이에서 ‘밥 잘 주는 학원’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난해 여름방학부터 관장 부부가 직접 조리한 점심을 제공하는 방학 특강을 운영 중이다. 1끼 가격은 5000원으로, 밥과 반찬 2~3가지, 김치 등이 제공된다.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활용한 반찬, 잔치국수 같은 특식도 나오곤 한다.
관장은 “도장 문을 닫은 뒤 다음 날 음식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마치면 새벽 1~2시가 될 정도로 일이 많다”면서도 “방학 때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점심을 먹게 하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 초등학교들이 겨울 방학에 들어간 가운데 A 태권도장처럼 ‘밥 주는 학원’이 학부모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방학에 발생하는 돌봄 공백을 사교육이 메우는 양상이다. 대개 초등학교 1·2학년은 방학에도 학교 돌봄이 가능해 점심이나 간식이 제공된다. 3학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우리동네 키움센터’(서울)와 같이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돌봄 시설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이용조건이나 수용인원이 시설마다 달라 모든 돌봄 수요를 감당하긴 역부족이다.
이런 틈새를 겨냥해 맞벌이 가구가 많은 서울 등 수도권에 위치한 초등학생 대상 학원 상당수는 점심이 포함된 방학 특강을 운영 중이다. 태권도 학원뿐 아니라 논술, 수학, 영어, 예체능 등 교습과목과는 무관하게 퍼지고 있다. 대부분 조리시설이 없어 인근 식당에서 도시락, 주먹밥 등을 단체 주문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경기도 과천의 B미술학원은 2주 단위 방학 특강을 운영한다. 방학에 가족여행 등을 계획하는 부모들을 고려했다. 이 학원은 교습비와 반찬가게에서 단체 주문해 제공하는 점심을 포함, 2주에 42만원을 받는다. 원장은 “2월 말까지 2주 단위로 운영하는 겨울 방학 특강은 지난달 이미 정원이 마감됐다”며 “오전 보육과 점심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 방학마다 등록하러 오는 학부모도 있다”고 했다.
대부분 동네 학원이라 수강 인원이 많지 않은 편이다. 때문에 희망하는 학부모들은 방학 전부터 미리 학원에 등록하거나 등록 대기를 걸어야 한다. 경기도 고양에서 초교 3학년 자녀를 키우는 C씨는 “근처 학원 여러 곳을 알아봤지만, 기존 재원생이 아니어서 점심 제공이 어렵다고 하더라”며 “어쩔 수 없이 대기를 걸고 다른 학원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전에는 식사를 제공하는 학원이 대학 입시를 위해 종일 강의를 듣는 재수 종합학원 등으로 한정됐지만, 요즘은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어린 자녀들에 대한 돌봄 수요가 맞물리며 중소 규모 학원으로도 확장된 양상이다. 지난해 6월 통계청에 따르면 12세 이하 자녀가 있는 맞벌이 가구 비중은 10가구 중 6가구로 집계됐다.
일각에선 ‘관리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행 단체급식법상 50명 미만에게 급식을 제공할 땐 신고 대상이 아니다. 대부분 소규모의 동네 학원이어서 교육당국도 사실상 관여하지 않고 있다.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서울 목동의 한 영어학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D씨는 “그냥 ‘위생을 신경 쓰고 있다’는 학원 측의 말을 믿고 맡기고 있다”고 했다.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수는 “맞벌이가 늘어나며 아이들 보육 수요가 늘고 학원은 학생 수 감소로 인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절실함이 만든 현상”이라며 “지자체 등이 지원하는 다양한 돌봄 프로그램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